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 건전성을 강화해야 하다보니 아무래도 담보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자,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줄였다.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거절당한 이들은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렸고, 높은 이자는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두 배, 세 배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당시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서민금융확충반안이다. 서민들의 금융애로를 해소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고, 창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미소금융이 등장했고, 금리를 낮춰 돈을 빌려주는 햇살론 상품도 나왔다.
미소금융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추진하던 '마이크로크레딧'에 근간을 둔다. 그냥 아무 데나 쓰는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창업'자금에 해당한다. 자활 의지가 있는 사람에 대해 창업 업종, 준비 상황 등을 상담사가 종합적으로 점검해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심사를 통과한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 대표적으로 유명한 민간 마이크로 크레딧 성공 사례다.
우리나라는 이런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대기업과 은행이 미소금융 지점을 설치하고 전통시장 상인회나 지역사회, NGO 등과 연계해서 창업을 돕는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대출' 못지않게 '자활지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영컨설팅이나 법률과 세무부문 자문 같은 것도 도와줬다. 휴면예금과 기부금을 재원으로 하는 중앙재단, 6개 기업재단(현대차 삼성 LG SK 포스코 롯데)과 5개 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이 2009년 12월부터 대출을 시작했다.
당장 떡볶이 가게라도 차리고 싶은데 담보도 없고 신용도도 낮은 사람들은 이 '무담보 소액대출'을 가뭄에 단비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2년 전 미소금융이 출범할 당시 취재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대감에 신청하러 왔다가 여러가지 까다로운 요건에 발걸음을 돌리며 실망스러워했다. 한 30대 여성은 아기를 혼자 키우는 엄마였는데, 생계를 위해서 학교 앞에 자그마한 분식점 문을 열고 싶었지만 돈이 문제였다. 지금은 연락도 안 되는 남편이 진 빚을 떠안고 있어서 제대로 된 대출 받기는 아예 엄두도 못냈다.
그랬던 그녀가 미소금융 심사를 받고 500만 원을 대출받고 기뻐했던 모습이 생각난다. 직접 학교 앞 떡볶이 가게에 가서 장래 계획 이야기도 들어보고 꼭 성공해서 아기를 떳떳이 키우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었다. 500만 원으로 어떤 창업을 하고,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는데, 소액 같지만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들, 빌린 돈이 이자 폭탄으로 돌아올까 엄두도 못내고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요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러던 미소금융의 대출 실적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올해 2천억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 9월말까지 미소금융으로 모두 3만6천여 명이 2천272억 원을 빌렸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체 대출액보다 96%가 늘어난 것인데, 아무래도 경기 둔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창업에 나선 소규모 자영업자들, 생계형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탓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만 빌려줬는데 부실이 난다면 의미가 없다. 대출이용자는 크게 늘었는데도 연체율이 3.1%로 양호한 편이라는 점이 다행스럽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인 데다가 이자가 4.5%로 상당히 낮은 편이어서 연체율이 높지 않고, 제도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연체율 낮추는 것 이어 '창업성공률'도 챙겨봐야
그런데 연체율이 낮은 것도 물론 중요한데, 반드시 '사업성공률'도 따져봤으면 한다. 가끔 떡볶이 집을 열었던 그 30대 여성이 장사는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게 같은 맥락일 것이다. 창업을 통한 재기 지원이 1순위 목표인 미소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지표는 '회수율'이 아니라 '사업성공률'이 돼야 할 것이다. 앞으로 미소금융이 더 확고한 기반을 갖추려면 자활성공 사례를 더 많이 발굴하고 알리는 것이 좋겠다.
이런 가운데 들려온 비리 소식이 미소금융 '훈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의 간부가 거액의 뒷돈을 받고 복지사업자 단체에 서민대출용 자금 35억 원을 지원했고, 이 단체의 대표는 대출재원 중 상당액을 횡령한 혐의다. 은행 문턱 두드리기도 어려운 서민들은 너무 까다로운 심사 절차로 소액 대출 받기조차 너무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런 미소금융 재단에서 이런 비리가 발생했다는 건 죄질이 상당히 나쁘다.
지난 2년 간의 운용 결과 보완돼야 할 부분도 눈에 띄고 재단 운영과 관련해 이런저런 말들도 적지 않다. 복지사업자 선정 과정의 공정성은 애초부터 잡음이 있었다. 미소금융이 이명박 정부의 주요 친서민 정책이다보니 친정부 성향 단체가 몰려 잡음이 적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때문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번 비리가 어찌보면 예고됐던 것이고 드러난 것 외에도 더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미소금융중앙재단의 사업자 선정과 자금지원 절차 등 실태 전반을 조사하고 나서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마련됐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미소금융이 초기 대출실적 독려하는 단계에서 이제 사후관리에 신경쓰는 단계로 접어든만큼, wp도적으로 비리를 막을 수 있는 구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서민에게 오히려 박탈감과 좌절을 안겨주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