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보험을 팔 때와 달리 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고객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나 봅니다. 가입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습니다. "다 보장해 준다"고 설명해 놓고선 이런 저런 조건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미루거나 적게 주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취재 중 만난 지도화 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 씨는 51개월 전 두 아이를 위해 병원 치료비를 지급해 주는 실손 의료보험에 가입해서 한 아이 당 매달 5만 원 넘는 보험료를 냈습니다. 20년간 보험료를 내면 80세까지 치료비를 거의 다 보험금으로 지급받고, 보험료의 절반은 적립해 뒀다가 만기 때 적립금의 97%를 되돌려 받는다는 보험설계사의 설명을 듣고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가 아파 병원 치료를 받고 14만 원 정도의 치료비를 보험금으로 청구하자 보험사에서는 갑자기 "하루 최고 지급 금액이 10만 원 인 것 모르셨냐?"며 연락이 왔습니다. 살펴봤더니 보험사가 준 가입설명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이 '5천 원을 뺀 나머지 치료비는 다 지급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설명서에도 없는 내용을 이제와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해 진 지 씨가 나머지 핵심 내용도 알아봤더니 20년 동안 보험료를 적립했다가 절반 가까이 되돌려준다는 약속도 당초 설명과 달랐습니다. 20년 동안 보험료를 낸 뒤에도 80세까지 5년 단위로 갱신되면서 보험료는 오르게 돼 있고 이렇게 오른 보험료는 적립된 금액에서 공제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아이가 아파서 병원 치료를 받고 청구하면 보험료가 오르면서 적립금에서 공제가 되고 적립금이 부족하면 보험료를 또 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험사는 이제와 "사실상 자동차 보험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고 설명했고, 화가 난 지 씨는 손해를 감수하고 보험을 해약했습니다. 지 씨의 경우 만약 금감원에 민원을 냈다면 보험사의 불완전 판매에 대한 조치가 내려왔을 것으로 보일 정도로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 경우였습니다.
실손의료보험, 흔히 실비보험이라고 하는 상품은 대부분 3년이나 5년마다 보험료가 갱신되는 구조인데 이렇게 보장 기간이 길게 되면 가입자들이 예상치 못하는 추가 부담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비를 보험금으로 지급받고 나중에 보험료의 일부를 적립한 것도 환급받을 수 있다는 설명은 만기시에는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보험사들은 가입 당시에 이런 사실을 계약자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상품을 팔아야 하며 특히 어떤 조건에서 치료비에 대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지를 우선적으로 꼼꼼히 설명해야 하는데 한 명이라도 더 가입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설명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비 지급 민원 뿐 아니라 올 하반기 들어서는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 급등 민원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갱신 기간이 다가와 갱신을 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폭으로 보험료가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3년 전 출혈을 감수하며 상품을 팔았던 보험사들이 이제와서 손해를 보고 있다며 무려 30%~40%씩 보험료를 올리고 있는 '꼼수'가 있습니다.
당시 금융 당국은 손해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실손의료보험 상품의 구조를 지적한 뒤 의료비 보장한도를 100%에서 90%로 축소하도록 했는데 보험사들은 "이 때 안 들어두면 손해"라며 오히려 가입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2008년과 2009년 가입한 실손 보험 신규 가입자만 860만 명이 넘을 정도입니다. 반면 2010년에는 100만 명 이상 급감했습니다. 이런 출혈 경쟁 판매는 예상대로 손해율 급등을 가져왔습니다. 보험료로 받은 돈에서 보험금이 지급된 돈을 따져보는 것이 손해율인데 2007년 83% 수준이던 실손보험 평균 손해율이 2010년 회계연도에는 104%까지 치솟았습니다. 보험료 받은 것보다 보험금으로 준 돈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당장 내년까지 860만 명이 이런 보험료 인상 폭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감원도 뒤늦게 실손보험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고 우선 가입자들에게 갱신시 보험료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과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조건들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또 보험료 구조에 대해서도 특별팀을 통해 연말까지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대로 둘 경우 나중에 소득은 없는데 보험료는 갈수록 뛰는 가입자들이 속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습니다. 치료비도 대주고 적립한 돈도 돌려준다는 장미 빛 설명을 한다면 뭔가 그 이면에 다른 것이 있다는 의심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실손 보험에 가입하려고 할 때는 가급적 순수보장형 상품을 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특약 사항을 점검해 불필요한 항목을 없애는 것도 좋습니다. 실손 의료보험은 이미 가입한 다른 보험 상품에서 보장하는 내용이면 중복해서 지급이 되지 않기 때문에 특약 사항만 꼼꼼히 점검해 제외해도 그만큼 보험료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맞는 구조로 스스로 상품을 맞춤하는 것이 그나마 이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