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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 독재, 고향 마을 하수구서 참혹한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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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앵커>

독재는 카다피에게 부와 명성을 줬지만 국민의 뜻을 외면한 결과는 혹독했습니다. 42년 절대 권력을 하수구에서 마감해야 했습니다.

임상범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69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카다피는 석유 판 돈을 기간산업과 복지에 쏟아부으며 한때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팬암기 사건을 포함해 갖가지 테러의 배후로, 서방 국가들과 대립했던 카다피는 서서히 독재자로 변해갔고 민주화 요구엔 귀를 닫았습니다.

[카다피/2005년 CNN 인터뷰 : 리비아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중대한 모욕입니다. 법적으로 대응할 겁니다.]

리비아 시민들은 더이상 참지 않았습니다.

지난 2월 뱅가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삽시간에 반 카다피 투쟁으로 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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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는 시위대를 '쥐새끼'라고 부르며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습니다.

[1986년 관저가 폭격당해 내 자식들이 죽었을 때 쥐새끼들(시위대)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지난 8월 '새벽 인어 작전'을 통해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에게 함락되자 카다피의 광기는 극에 달했습니다.

[공격하려거든 맘대로 하시오! 진정한 남자, 순교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결사 항전을 외치던 카다피는 잠적 두 달 만에 고향 마을 하수구에 숨어있다 붙잡혀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하수구 입구에는 "쥐, 카다피가 있던 곳"이란 낙서가 생겼습니다.

카다피의 시신은 은밀한 장소에 비공개로 매장될 예정이어서 죽어서도 흔적조차 남지 않을 기구한 운명이 됐습니다.

(영상편집 : 김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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