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한·서??' 이것이 뭘까 제목보고 의아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조·상·제·한·서'는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등 시중은행의 설립된 순서대로 부르던 줄임말이었다. 과거 60~70년대 경제개발을 함께 이끌었던 5대 은행들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하나둘씩 사라졌지만 워낙 사람들의 뇌리에 크게 남아있어 지금도 낯설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다.
IMF 이후 '조·상·제·한·서' 는 하나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조흥은 신한은행으로, 서울은 하나은행에 인수됐고, 상업과 한일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뒤 통합돼 지금의 우리은행이 됐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국내 대기업들의 판도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만, 은행만큼 크게 진행된 곳도 없을 것이다. 5대 은행이 간판을 모두 내리고 문제가 됐던 은행들 여러 개가 합쳐지는 과정에서 몸집도 불어나 '국민·신한·우리·하나'의 4강 체제가 구축됐다.
국민·주택·장기신용·동남·대동은행이 합쳐진 국민은행, 상업·한일·평화은행이 통합된 우리은행, 조흥·신한·동화·충북·강원은행이 합쳐진 신한은행, 서울 · 하나 · 보람 · 충청은행이 합친 게 하나은행이니 이것만 봐도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업계 변화가 진행됐는지 짐작이 된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제일은행이었다. 2000년 미국 뉴브리지캐피탈에 팔렸다가 2005년에는 스탠다드차타드(SC)를 새주인으로 맞아 SC제일은행이란 반반 이름을 써왔다. 그런데 이제 '제일' 은행마저 사라지게 된 것이다. 1958년 탄생한지 53년만이다.
SC제일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한국내 SC 그룹의 인지도를 높이고 사업 확장을 위해 사명을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05년 제일은행 인수한 뒤 사명 바꿀 것을 고민해왔었는데, 제일은행이 한국내에서 가진 이미지가 워낙 선명해서 지금까지 함께 써왔었다는 것.
표면적으로 SC는 전세계의 모든 SC 현지은행들이 스탠다드 차타드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는데 한국만 SC제일은행이어서 통일성이 떨어진다는게 이유다. 하지만 업계에선 그동안 계속돼온 SC제일은행의 파업사태가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격랑의 구조조정에 휩싸인 제일은행 직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제일은행을 살려달라"며 호소했던 비디오가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전 사회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라 그 비디오는 많은 사람을 울컥하게 했다.
한때 5대 시중은행으로 이름을 날렸던 제일은행은 주인없는 세월 동안 고객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SC인수 후에도 고객 이탈이 계속돼 그저그런 중간 규모의 은행으로 내려앉았고 지지부진 영업을 이어왔었다.
그러다 회사측의 연봉제 도입 등에 반대한 노사분규 등으로 다시 위기를 맞았던 것. 파업은 은행권 최장 파업 기록을 갈아치우며 장기화됐고 사측과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회사 측은 일부 영업점 문을 닫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신규 업무는 아예 취급하지 못한 채 입출금만 간신히 하고 있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고객 이탈도 더 가속화됐다.
SC 제일은행은 현재 상무급 이상 임원에 대한 명예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은행에서 임원의 대규모 퇴직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 업계에서는 SC가 SC제일을 정리, 매각하고 나가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소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상무급 임직원 150명 중에서 90명 정도를 명예퇴직 대상으로 삼고있다는 것은 말로만 희망퇴직이지 사실상 강제퇴직이라는 것이다.
SC 제일은행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면서 오히려 SC제일은행에서 SC로 사명을 바꾼 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행도 외국은행도 아닌 어정쩡한 스탠스에서 씨티나 HSBC처럼 한국내 외국계 대표은행으로 기능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스탠다드 차타드 쪽이 약속을 지키고 한국내 영업에 힘을 쏟을지, 아니면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계은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본사 이익 극대화에 충실할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SC제일은행이 SC로 사명변경한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초등학교 다닐 때 집 주변에서 항상 볼 수 있었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제일은행의 주황색 로고가 다시 한 번 떠오르는 건 기자 뿐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