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식 경영의 시작
그러나 이렇게 연구 범위를 확대하면서 비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황우석 연구팀의 인력은 60여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많은 연구를 추진하다보니 곳곳에서 부실한 점들이 드러났습니다. 줄기세포 배양실험을 간이 막사에서 하다가 세포가 곰팡이에 오염되기도 했고, 어린 복제돼지를 멀리 있는 양육시설로 옮기는 과정에서 돼지들이 폐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보통의 연구실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사고입니다. 이런 사고들이 연구에 막대한 지장을 끼쳤습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연구는 매우 전문적이어서 모든 연구를 혼자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황 박사도 연구를 확장해 나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황우석 연구팀은 연구 주도권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황우석 연구팀이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줄기세포와 이종 장기 연구는 그동안 '의학' 분야에서 주도했던 연구과제였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황 박사는 학문적으로 '적자'가 아니었습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연구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은 그 분야에 노하우를 가진 연구자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전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 박사는 미국 피츠버그대학 '섀튼' 교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섀튼' 교수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지만, 넓은 범주에서 보면 위에서 언급한 얘기와 같은 맥락입니다. '공동 연구'라는 미명 아래 논문 게재 주선, 노벨상 추천 같은 부수적이고 이득은 있었을지 몰라도 실제 연구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황 박사는 국내에서는 최고 수준의 과학자였지만, 국제 과학계에선 아직 무명 인사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외국 과학자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기 위해 일정 부분 양보하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겉은 화려하고 멋있었지만, 기대만큼 내실을 채우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줄기세포, 그리고 논문조작
줄기세포에는 엄청난 놀라움과 신기함이 있습니다. 이 세포는 모든 장기와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 덕분에 도롱뇽의 꼬리는 잘려도 다시 생겨나고, 히드라는 몸의 20분의 1만 있어도 몸 전체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도 줄기세포를 확보한다면 다친 장기와 조직을 원상회복할 수 있습니다. 공상영화에나 나오는 꿈같은 얘기입니다.
그러나 줄기세포를 확보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줄기세포를 우리가 원하는 특정 세포로 분화시키는 건 더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줄기세포 연구는 수정란이나 복제배아를 이용할 경우 사회적·윤리적으로 큰 논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건 우선 생명의 시작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배아'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또, 복제배아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복제가 이뤄질 우려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으로도 신의 영역으로 여겨온 인간생명을 인간이 조작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황 박사가 인간 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1999년부터였습니다. 이 무렵 황 박사는 동물의 난자를 이용한 복제기술을 통해 불치병 치료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동물의 난자는 우선 구하기 쉽고, 황우석 연구팀이 오랫동안 다뤄온 분야이어서 현실적으로 연구가 수월했습니다.
연구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연구팀은 36세 남성의 체세포를 복제해 세계 최초로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성공률이었습니다. 1,742개의 난자를 이용했지만 고작 11개의 배반포를 만들어 내는 데 그쳤습니다. 배반포 형성률은 고작 0.6%. 엄청나게 많은 난자를 실험에 이용했지만 줄기세포는커녕 배반포도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동물의 난자로는 실험에 한계가 있다 판단한 황우석 연구팀은 핵이식용 난자를 동물에서 인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인간의 난자는 수의학 연구 분야에서 다루지 않아 황우석 연구팀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성근, 류영준 두 박사가 연구팀에 합류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성근은 난자가 들어 있는 난소를 오랫동안 다뤄왔고, 류영준은 의과대학 출신이었습니다. 서울대 의대 문신용 연구팀의 지원도 큰 힘이 됐습니다.
실험에 사용할 여성의 난소는 한양대병원에서 얻었습니다. 30명의 여성 난소에서 추출한 166개의 난자를 복제배아 줄기세포에, 나머지 84명의 여성 난소에서 얻은 371개의 난자는 수정란 줄기세포 연구에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배반포 형성률이 1%를 넘지 못했습니다.
연구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소의 난자는 쉽게 얻을 수 있고 양도 많았지만 서로 다른 종이라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인간난자는 대상자의 나이가 많고 미성숙난자였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결국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난자였는데, 인간의 싱싱한 난자를 어떻게 대량으로 확보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습니다.
황 박사는 다른 연구팀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문신용, 미즈메디병원 노성일이 황우석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복제배아의 생산을 맡되 인간난자를 다뤄본 경험이 적었으므로 의대 문신용 연구팀의 자문을 받기로 했습니다. 줄기세포 추출과 배양은 냉동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해온 노성일 연구팀이 맡기로 역할을 나눴습니다.
노성일이 운영하는 미즈메디 병원은 불임치료 전문기관으로 다량의 난자를 비교적 쉽게 채취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11월부터 2003년 3월까지 21명의 여성에게서 423개의 난자를 채취해 황우석 연구팀에게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난자가 줄기세포 연구에 한꺼번에 대량으로 사용되는 건 다른 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난자를 이용했지만 연구 성과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복제배아를 배양해 30개의 배반포를 얻었지만, 최종 결과물인 줄기세포는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드디어 황우석 연구팀은 2004년 '사이언스'를 통해 인간복제배아 줄기세포 1개(SCNT-hes-1)를 확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연구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이 논문으로 황 박사는 한 순간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때부터 언론은 황 박사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예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05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수퍼급 논문'이 '사이언스'에 또 실렸습니다. 11명의 환자 체세포를 가지고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모두 확립해 매우 높은 효율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줄기세포 배양에 동물 세포가 아닌 인간 세포를 이용해 실제 치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인 점도 큰 연구 성과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영광스럽게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으로 실렸습니다. 언론은 황우석 박사를 세계 최고의 과학자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국민들은 환호했고, 세계적인 과학성과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황우석 연구팀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세계줄기세포허브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황 박사는 이 프로젝트에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자들을 참여시켜 줄기세포 후속 연구와 연구 주도권을 한꺼번에 잡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돌리를 탄생시킨 월머트와 원숭이 복제에서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었던 섀튼 같은 연구자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황우석은 노벨상에 한 걸음 다가선 것으로 보였습니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받아온 연구비도 대폭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2006년 1월,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공식적으로 이 연구논문은 거짓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확립된 복제배아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고 판정 내렸습니다. 조사 결과, 논문에 사용된 줄기세포 염색사진, DNA 지문분석, 테라토마 사진, 영양세포, 난자 개수 등 논문 대부분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논문 제출 시점까지 확립했다고 알려진 2, 3번 줄기세포도 미즈메디병원의 4번 8번 수정란 줄기세포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나마 확보했다던 1번 줄기세포도 탈핵이 되지 않는 난자의 자체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줄기세포의 DNA 지문이 체세포 공여자의 DNA 지문과 다르고, 그 불일치 부분은 체세포와 달리 동형접합을 모두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자체 돌연변이로 줄기세포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1번 줄기세포의 각인 유전자를 자체적으로 검사한 결과, 모계 유전자와 부계 유전자가 모두 나왔으므로 처녀생식이 아닌 핵이식에 의한 줄기세포라고 서울대 조사 결과를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에 서울대는 보충자료를 통해 1번 줄기세포의 각인 유전자가 모계 각인을 확연하게 드러냈고, 추가로 실시한 DNA 지문분석으로 더 많은 동형접합이 확인돼 처녀생식의 산물임이 확실하다고 발표했습니다.
검찰도 서울대와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줄기세포가 바뀐 데에는 줄기세포 배양의 책임을 맡은 미즈메디병원 소속 김선종 연구원이 수정란 줄기세포를 남모르게 ‘섞어 심기’했기 때문이란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사실, 황우석 연구팀이 만들었다고 밝혔던 1번 줄기세포도 정식 실험 프로토콜을 통해 형성된 건 아니었습니다. 황우석 연구팀이 1번 줄기세포를 처음 확립한 것은 2003년 2월이었습니다. 연구팀은 그 뒤 제2, 제3의 줄기세포를 확실하게 확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습니다. 1번 줄기세포 확립 이후 체세포 핵이식 연구를 위해 제공된 난자는 600여 개로 이전에 제공된 약 400개에 비해서도 훨씬 많았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열심히 했지만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한 2004년 2월까지 줄기세포를 얻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1번 줄기세포는 확실한 연구 노하우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하게 예외적으로 얻는 부산물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사이언스' 논문에서 황우석 연구팀은 몇 가지 증거를 들어 1번 중 줄기세포가 핵이식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논문에서 DNA 지문분석이 동형접합이 아니라 이형접합을 보였으며 각인 유전자가 양 부모의 유전자를 모두 발현했다는 점을 핵이식 줄기세포의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지문분석의 일부가 일반적인 체세포 핵이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동형접합을 보인 것입니다. 또, 체세포 제공자, DNA 지문분석, 줄기세포 염색 사진, 테라토마 사진 등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연구팀은 자체적으로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요? 논문을 투고하기 전에 검증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와 관련해 이상한 점은 줄기세포주가 확립된 이후 DNA 지문분석 실험을 여러 차례 실시했는데도 정확한 데이터를 전혀 얻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2003년 5월 10월에 실시한 두 번의 실험에선 데이터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4년 2월과 9월에 실시한 3차, 4차의 실험에서는 줄기세포가 아닌 체세포의 DNA를 의뢰해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검증 실험 뒤에는 박종혁과 김선종 두 사람이었습니다.
1차 실험 때 박종혁이 줄기세포를 김선종에게 넘겨주며 DNA를 추출하라고 했는데, DNA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2차에서는 박종혁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지인에게 줄기세포 DNA를 의뢰해 재검까지 했는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3, 4차에서는 김선종이 수정란 줄기세포로 섞어 심은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줄기세포가 아닌 체세포의 DNA를 분석 의뢰했습니다. 실제로 2005년 PD수첩이 김선종에게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취재를 하고 있을 때 박종혁은 난데없이 첫 번째 2004년 1번 줄기세포도 확인했느냐고 묻는 ‘과민반응’을 보였습니다. 박종혁은 이미 벌써 1번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 박사 지지자들은 황 박사가 사기를 당했고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