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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환보유액, 얼마가 '적정'?

많아도 걱정, 적어도 걱정…외환보유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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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약을 먹고도 환자가 믿지 못해 차도가 없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의 부정적 바이러스를 경계해야 한다."

유럽 재정위기로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최근 정부가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위기관리대책회의로 전환한 이후 열린 첫 회의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던진 말이다. 심리적 불안감이 과도한 시장의 쏠림을 낳는데 대한 우려의 표시다.

믿음만 있다면 가짜 약이라도 병이 치료되는 '플라시보 효과'의 긍정적인 바이러스가 필요한 시점이라는게 박 장관을 포함한 정책당국자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런 긍정적 바이러스를 낳게 하는 여러 근거 중의 하나가 외환보유액이다. 외환보유액은 대외불안요인에 국내경기가 휘청일 때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외환이 모두 바닥나면서 생겼던 것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자금시장에 경색이 오면서 한미 통화스왑을 체결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글로벌 재정위기가 확산되자 당장 우리 외환보유액은 충분한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말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천억 달러를 겨우 턱걸이 했다. 9월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033억 8천만 달러로 한달새 88억 천만 달러가 줄어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11월 이후 2년10개월만에 최대 하락폭이다.

이렇게 줄어든 이유에 대해 정부는 유로화, 파운드화의 약세로 미 달러화 환산액이 크게 줄어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만 모두 설명되긴 어렵다.

결국 불안한 환율시장에 외환당국이 개입하면서 외환 실탄을 썼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적절한 시점의 시장개입은 시장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요즘같이 변동성이 큰 장에서 자칫 시장참가자들에게 오히려 반대 시그널을 줘서 역효과가 나거나 환투기 세력에세 달러 물량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책당국자는 3천억 달러에 턱걸이한 외환보유액을 놓고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외환보유액 '적정'기준이 너무 고무줄이고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3천억 달러를 훨씬 넘었을 때 불과 얼마 전까지 보유 비용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운용수익이 미미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었는데, 이젠 또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니 말이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2천억 달러의 외환보유고에 대해 괜찮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자금시장이 급속히 경색되더니 환율이 치솟고 몇차례 원화값을 방어하니 금새 한국의 외환사정이 위기라는 얘기가 쏟아졌다. 결국 미국과 통화스왑을 맺어서 간신히 위기를 면할 수 있었지만 그 당시 트라우마가 외환보유액이 얼마가 되든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시장에 남겼다.

정부는 아직까진 통화스왑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의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시장에 쓸데 없는 불안감을 막기 위해서 일면 타당한 스탠스인 것으로 판단되지만, 반드시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예상불가능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대책도 동시에 마련하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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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들도 문제가 있다. 2008년 당시 금융불안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달러를 구하기 어려워져 은행들은 외환유동성 부족으로 벼랑에 몰렸다. 그런 경험 때문에 이번 글로벌 재정위기가 본격화되자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자체 달러 조달을 주문했다. 은행들은 그러나 왜 위기가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는데 추가 조달비용을 들여서 비싼 달러를 구해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당장 쓰지 않을 외화를 비용을 물어가며 쌓아둬야 하느냐며 금융당국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들이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다시 위기를 겪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은행들이 할 몫이다. 위험에 도달했을 때 정부에 손을 벌리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은행들은 외환보유액에 기대려 하지 말고 스스로 달러 확보 노력을 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충분치 못해서 국가경제에 물의를 일으키게 되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월가에서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으로 살려놓은 금융기관들이 막대한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는 사실 등에 분개한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과 바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 막상 급할 때는 손을 벌려놓고 나중에는 돌변하는 태도는 한미 금융기관이 별반 다르지 않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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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선 기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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