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고용인들을 근무 시간이 짧은 저임금 임시직에 배치하고 정규직 승진 기회가 있는 일자리는 주로 남성들에게 맡긴 업체가 적발됐습니다. 이 업체는 또,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한 여성에게 앙갚음 차원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에 배치한 혐의도 받고 있는데요,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미국 시카고의 한 인력공급업체 Source One Staffing Solutions의 얘기인데요, 일자리를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누고 성별에 따라 인력을 배치하다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의해 성차별 혐의로 제소된 겁니다. EEOC는 "조사 결과 피해자의 고발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됐다"며 금주 초 시카고 연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연방 민권법 제7장(Title VII of 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은 고용기관이 인력 배치에 성 차별을 두거나 성별 때문에 고용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특정 성별의 인력을 요청했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는 것이 고용기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미국 내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데 놀랐습니다. 한국의 제법 큰 기업의 미국 현지 법인을 책임지고 있는 한 선배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직장 문화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많습니다. 그 분의 말을 직접 인용해 보죠.
"우리 회사에는 한국에서 파견된 근로자가 절반, 그리고 현지인(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포함)이 절반이다. 그런데, 미국 현지인의 경우에는 '내일 결근하겠습니다'하면 이유를 꼬치꼬치 물어선 안 된다. 잘못하면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소송을 제기하거든… 누가 지각을 했다면 우리나라 같으면, '너 왜 지각했니? 다음부터 조심해'라고 경고하기도 하지만 미국 현지인의 경우는 그렇게 못한다. 그냥 지각한 만큼 수당에서 빼면 된다는 거지."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미국이란 나라, 어찌 보면 선진국답기도 하고 어찌 보면 참 메마른 곳이구나 하고 느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진국다운 직장 내 인권 보호가 모든 기업과 모든 피고용인에 대해서 적용되고 있을까요? 결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특히 성차별은 물론이고 인종차별도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항상 웃는 낯에 차별 없는 대우지만 속사정은 그와 다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을 교묘히 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미국에서 알게 된 멕시코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가장 큰 힘이 불법이민자다. 미국은 매일 불법이민자를 막겠다며 국경에 진을 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법이민자가 없이는 미국의 경제가 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불법이민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나? 다 일자리가 있다. 미국이 불법체류를 방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친구가 설명한 내막은 이렇습니다. 미국 내 불법이민자(주로 중남미에서 온 경우가 많음)들은 처음에는 비자를 받아 입국했다가 비자가 만료된 이후에도 떠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2008년 기준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이민자 백4만6천여 명 가운데 멕시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3.7%로 가장 많고, 온두라스, 도미니카 등 다른 중남미 국가까지 포함하면 거의 1/3이 넘습니다. 여기에다 불법으로 남아있는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미국인구에서 히스패닉이 흑인을 능가한 지 오래입니다.
그 친구 말로는 미국에서 비자가 만료된 이후, 신분증 (주로 운전면허증으로 미국에서는 면허증 없이는 살아 가는 게 불가능합니다)을 위조합니다. 150달러에서 200달러만 주면 신분증을 위조해주는데, 솔직히 보면 다 알만큼 허술한 위조랍니다.
그런데 그런 신분증을 가지고 미국의 웬만한 작은 업체는 물론이고 대형 백화점에서도 취업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업주가 다 알면서도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묵인한다는 것이고, 나중에 적발이 되더라도 위조 신분증을 들고 와서 몰랐다며 발뺌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 친구 얘기 듣다 보니, 어째 우리나라 얘기같이 들리더라고요).
필자가 이것 저것 사례를 들어가면서 얘기하고자 하는 요점은 법이나 도덕보다는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선진 미국을 포함한 자본주의의 생리일 것이라는 겁니다. 앞서 선배가 말했던 선진 기업 문화의 모습은 주류 백인, 화이트 칼라에게만 적용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뒤에 말한 멕시칸 친구의 말처럼 미국 경제 저변에는 묵인된 차별과 불법이 상시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생리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 또 그로 인해서 전체의 자본주의 경제의 골간에 영향이 미쳐질 것으로 예상될 때는 그러한 자본주의의 나쁜 생리를 차단하려는 것이 국가이기도 합니다. 초급 자본주의는 국가가 자본의 완전한 보호자가 됩니다. 반면에 선진 자본주의는 국가가 자본을 견제하는 기능도 함께 수행합니다. 결국 국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없는가는 그 나라 경제 수준과 밀접하거니와 그 나라 경제의 미래와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전 세계가 죽느냐 사느냐의 경제 수렁에 빠져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재정 긴축을 위해 연금까지 깎는 극약 처방까지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는 파산 직전에 겨우 회생하는 듯 합니다. 많은 세금을 거둬 복지에 펑펑 쓴 탓도 있었기에 이제 복지를 줄여 세금을 아끼고 생산을 늘리려 노동력의 희생을 요구하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도 머지 않아 그런 위기가 올지 모릅니다. 지금은 고용차별이 있을 경우 국가에 호소하면 들어주기도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몰리면 국가가 제 역할을 스스로 방임할 수도 있습니다.
워낙 인간이나 국가의 본성과 관련된 이른바 '차별'이라는 주제를 논하다 보니 어수선한 얘기만 풀어놓은 듯 합니다. 자, 이제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 내 성차별이나 노동에 대한 차별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과거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만족할 수준이 되지 못합니다.
많이 좋아진 데는 앞서 말한 대로 국가의 역할이 있었습니다. 그 국가의 역할을 이끌어내기 위해 실제 피해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해 좋은 정치인을 뽑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국가가 제 역할을 방기할 때 이를 바로 잡도록 애써야 할 의무가 바로 국민 특히 언론에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