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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황우석 다시보기② - 정상에 서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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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가 걸어온 길

황 박사는 줄기세포 연구로 가장 유명해졌지만, 실제 연구했던 분야는 동물복제와 이종장기 등 다방면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습니다. 황 박사의 전공은 동물의 번식을 다루는 '산과학'이었습니다. 주로 대표적인 산업 동물인 젖소를 대상으로 임신진단, 정자 관리, 번식장애 등에 연구를 했습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도 난소호르몬에는 발정을 촉진하고 억제하는 호르몬 '에스트라이올'과 '프로게스테론'의 작동기작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이들 호르몬이 자궁과 세포질과 핵 사이를 오가며 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밝힌 논문이었습니다.

당시 이 논문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우수한 논문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하지만 황 박사가 연구해온 인공수정과 가축번식 분야는 첨단 학문 분야가 아니라 당장 유용하게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였습니다. 이는 황 박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황 박사는 순수한 학문적인 목적보다 실용화할 수 있는 연구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국가와 민족의 내일을 위한 연구를 하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인 얘기지만 결국 이런 관심이 훗날 화의 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1982년 박사학위를 받은 황 박사는 서울대 수의대 교수에 지원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임용에서 떨어진 황 박사는 일본의 명문대학 홋카이도대학에 연구원으로 갔습니다. 황우석이 들어간 곳은 동물 수정란 연구로 유명한 ‘가나가와 히로시’ 연구실이었습니다. 연구 책임자인 가나가와 박사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발생학을 공부한 학자로, 배아를 미세조작기로 정교하게 분할해 그 분할된 배아가 새로운 개체로 발생하게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가나가와 연구실은 전통적인 인공수정 단계를 넘어 수정란 이식, 수정란 분할복제까지 연구를 확장하고 있는, 동물 번식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력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황 박사는 국제적인 연구 동향에 눈을 떴습니다. 이 연구실에서 수정란 연구에 중요한 수정란 동결법과 미세분할 연구 등을 충실하게 배웠습니다. 또, 초기 발생 단계의 수정란을 정교하게 분할하는, 선진국에서도 처음 시도되는 미세조작기술까지 모두 익혔습니다. 황 박사는 가나가와 연구실에서 익힌 기법을 발전시켜 훗날 현미경에 장착된 미세조작기를 사용하는 이른바 '젓가락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로서 현미경 아래에서 미세유리바늘과 마이크로 피펫을 가지고 수정란이나 난자를 정밀하게 분할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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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번식기술은 난자와 수정란을 좀 더 정교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인공수정이 단순히 정자를 암컷의 생식기에 주입하는 것이라면, 수정란 이식은 우수한 유전형질을 지닌 암컷을 품종 개량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 뒤에 등장한 체외수정은 우량 암컷을 과배란 시킨 뒤 수컷의 정자를 주입해, 암컷 체내에서 다수의 수정란이 만들어지도록 했습니다. 이 우수 수정란을 채취해 곧바로 다른 대리모에게 분산 이식해 우수한 동물을 여러 마리 얻을 수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도 이런 연구 분야를 차례로 거치며 발전해 왔습니다.

황우석은 1986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 후 본격적으로 수정란 이식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젖소의 수정란을 미리 적절히 탈수한 후에 급속 동결 시켜 성공적인 연구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 뒤 1990년까지 인위적으로 쌍둥이 송아지 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생산성 증가를 시도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쌍둥이 송아지 수태율이 1~5%에 불과하지만 이분할 수정란 이식, 과배란 유도 후 인공수정, 인공수정 후 수정란 이식하는 방법을 통해 쌍둥이 임신율을 21.4%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이로써 홋카이도에서 배운 새로운 연구 방향, 수정란 이식 연구를 완성한 셈입니다. 물론 당시로서는 매우 앞선 연구였지만, 아직 난자나 수정란을 정교하게 조작하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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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가 다음으로 추진한 연구는 '체외수정'이었습니다. 체외수정 연구는 1978년 영국에서 패트릭 스텝토와 로버트 에드워즈가 시험관 아기 '루이즈 브라운'를 탄생시키며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선 1985년 서울대 의대 장윤석 연구팀이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켰는데, 나중에 황우석과 인연을 맺은 문신용 박사가 이 연구팀에 연구원으로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 뒤 1988년 홋카이도대 후쿠이와 오노 연구팀이 체내성숙난자가 아닌 미성숙난자를 체외에서 배양한 시험관 송아지를 탄생시키자, 황 박사도 체외 수정을 통한 시험관 송아지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당시 후쿠이와 오노 연구팀과 공동 연구했던 권오경 박사가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황 박사의 연구는 탄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체외수정은 단순한 생물기술의 발전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복제혁명의 토대를 놓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동안은 자연에서 성숙한 난자를 처리해서 한 마리당 고작 십여 개를 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미성숙난자 이용한 체외수정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동물난자의 수를 무한대로 늘려줬습니다. 특히, 소의 경우 난자가 들어 있는 난포세포는 대부분 성숙된 난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적절한 조건에서 인위적으로 배양하면 수많은 성숙난자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소의 난자는 도축장에서 대량으로 구할 수 있어 실험에 쓰기에 매우 유리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자 다루는 기술은 의학 분야가 수의학 분야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물을 다룰 수 있다는 장점(사실상 난자를 무한정 획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난자를 다루는 기술이 수의학 분야에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체외수정 연구에서 가장 어려운 난점은 수정란이 8~16세포기에서 분열이 중단된다는 사실입니다. 미성숙난자를 배양, 수정해서 배반포기까지 키워야 수태율이 높아지기에 초기 배아의 성공적인 배양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이 문제를 실제 발육되는 난관의 상피세포를 채취해 수정란과 같이 배양시키는 방법을 써 해결했습니다. 즉, 체외수정으로 개체를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수정란의 분할율을 크게 높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1993년 드디어 황우석은 국내 처음으로 시험관 송아지를 생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구팀은 미성숙난자 체외 배양으로 280개의 난자 얻어 그것을 배반포기로 키워 68개를 대리모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태어난 송아지는 홀스타인 젖소 난자와 한우 정자를 사용해 온몸이 진한 밤색인 잡종 송아지였습니다. 이 시험관 송아지를 통해 ‘황우석’이라는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하게 됐습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은 그동안은 난자의 체외배양과 체외수정, 수정란 이식 등 시험관 송아지 생산 과정에 대한 연구가 부분적으로 이뤄졌지만 이번 연구는 전 과정을 접합시켜 순수한 시험관 송아지를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했다고 밝혔습니다.

황우석은 시험관 송아지 생산에 성공한 뒤 바로 수정란 복제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특히 이병천(현 서울대 수의대 교수)이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연구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수정란 복제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발생 중인 수정란의 할구를 분할(수정란 분할)하거나 할구의 핵을 다른 난자에 이식(핵이식)해 복제 동물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수정란 복제는 성체가 아닌 배아의 핵이나 세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체세포 복제와 다릅니다. 우수한 유전형질을 똑같이 지닌 동일 개체를 단기간에 여러 마리 생산이 가능한 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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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해 수정란 핵이식 복제에 대한 연구 체계를 상당 부분 확립했습니다. 복제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이식과 세포융합, 복제 수정란 배양입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연구 초기에 사용하던 끝이 예리한 피펫 대신 끝이 둔한 피펫을 사용해 핵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세포질이 손상되는 걸 최소화했습니다. 세포 융합은 조작이 복잡하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센다이바이러스 대신 수치 조작으로 정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전기 자극법을 이용했습니다. 또, 융합된 세포 발육은 세포를 키우는 배지의 농도를 조절해 배양을 시도했습니다. 사실 이런 개별 복제기술은 주로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성과들이었습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이런 기술들 잘 응용해 실제 연구에 적용해 나갔습니다.

황우석 연구팀은 소 복제에 도전했습니다. 하지만 소를 복제하는 건 쥐의 그것과 달리 축적된 연구데이터가 없어 성공하기 매우 힘들고 어려운 연구였습니다. 그러나 황우석 연구팀은 다른 연구팀들과 달리 체외 수정의 연구 경험이 풍부했고, 도축장에서 얻은 엄청난 양의 난자를 이용해 반복된 실험을 거쳐 시행착오를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1995년 연구팀은 마침내 소 수정란 핵이식 복제에도 성공했습니다. 홀스타인 젖소와 한우를 대상으로 핵이식을 통한 복제를 시도해 성공적인 수정란 복제가 이뤄졌습니다. 홀스타인 복제 젖소가 가장 먼저 탄생을 했는데, 이는 젖소가 한우보다 경제적인 가축이어서 젖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 왔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황우석은 핵이식 기법의 성공으로 혁명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황우석은 상대적으로 연구 시작은 다소 늦었지만 매우 짧은 시간에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팀으로 거듭났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우선 황 박사는 해외연수를 통해 세계적인 연구 흐름을 예리하게 파악했고, 이를 즉각 연구에 반영했습니다. 또, 동물의  난자는 손쉽게 대량으로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 성실하고 꾸준히 연구한 끝에 정상 수준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구팀은 인공수정, 수정란 이식, 체외수정, 수정란 복제를 순차적으로 성공해 나갔는데, 이 연구 하나하나는 그 다음 연구의 중요한 디딤돌이 돼 주었습니다. 이처럼 황우석 연구팀은 성실하고 꾸준한 연구로 정상 수준의 연구팀으로 거듭났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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