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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신비의 '전신주 구멍'…어디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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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끝자락인 지난달 말, 환경부 방송취재단은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용천동굴을 탐험 취재하기 위해서였죠.

취재진이 당도한 곳은 제주 월정리의 한 시골 도로 옆 전신주 앞이었습니다.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는 동굴로 안내한다더니 왜 전신주 앞에 모였을까?'

의문은 잠시 뒤 풀렸습니다. 전신주 앞 철제 뚜껑을 열어보니 지하 8미터 아래 동굴로 들어가는 사다리가 나타났습니다. 랜턴이 부착된 헬멧을 쓰고 가파른 사다리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영상기자들은 10킬로그램이 넘는 ENG 카메라를 밧줄에 매달고 내려보내야 했고요.

바닥 아래 또 다른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 취재진의 입은 쩍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만 개의 종유관과 석순이 위 아래로 매달린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세계자연유산관리단의 전용문 박사는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0.0001%도 못 들어온 용천동굴에 들어와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직 일반인의 출입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니까요.

용천 동굴은 기본적으로는 용암 활동에 의해 형성된 '용암 동굴'입니다. 화산 활동에 의해 지하 공간이 생겼고, 용암이 흐르다 굳은 용암 폭포와 용암 두루마리 등 기이한 생성물들이 형성돼 있죠.

그런데, 용천동굴 안의 생성물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종유관, 종유석, 석순, 동굴팝콘, 동굴진주 등 석회 생성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석회 생성물들은 용암 동굴이 아닌 '석회 동굴'에서 생기는 생성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용암 동굴 안에 왜 이런 석회 생성물들이 들어차게 됐을까요? 전문가들의 설명을 들은 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용암 동굴 위 지표에서 자라던 식물들의 뿌리가 동굴벽에 균열과 틈을 만들었다. 그런데 다른 용암동굴과는 다르게 용천동굴 위는 대륙이 아닌 바닷가다. 바닷가 모래의 상당부분이 죽은 조개껍질 같은 석회질 물질인데, 빗물에 녹아 동굴에 생긴 틈을 타고 스며들었다. 30만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석회 동굴에서나 볼 수 있는 석회 생성물들이 쌓이게 됐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용천동굴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 세계자연보전총회 유치전에 뛰어든 제주도는 맥시코 칸쿤에 뒤지고 있었는데, 이 용천동굴을 심사위원들에게 공개한 뒤 전세가 역전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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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탐험이 계속됐습니다. 바닥에는 생전 처음 보는 별사탕 모양의 생성물들이 가득했는데, '동굴 팝콘'들이었습니다. 동굴 팝콘은 동굴 천장의 석회수 방울들이 바닥에 고인 웅덩이에 떨어지면서 자연적으로 침전된 석회 생성물입니다.

또, 5천 년 동안 5미터나 자라 바닥과 불과 5센티미터를 남겨둔 종유관도 있었습니다. 이 종유관이 5센티미터를 더 자라 바닥과 만나려면 앞으로 백년이라는 세월이 더 걸려야 한다는 게 동행한 전문가의 설명이었습니다.

선반처럼 튀어나온 동굴 벽에는 턱을 괴고 있는 '반가사유상' 모양의 석순이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이 신비스러운 동굴의 전체 길이는 3.4킬로미터. 2.6킬로미터 지점에선 새파란 지하호수와 맞닥뜨립니다. 스쿠버 다이빙이 필요한 구간인데요, 물속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제기와 가축으로 보이는 동물 뼈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3백 년 전쯤인 8세기경, 통일신라의 귀족들이 어떤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이 신비스러운 동굴에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자연적, 역사적 가치가 훌륭한 동굴이 어떻게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걸까요? 용천 동굴의 나이는 약 3십만 년으로 추정되는데요, 이 동굴이 현대인에게 발견된 것은 불과 6년 전인 2005년 5월입니다. 도로 전신주 설치 공사를 하던 중 지하가 무너져 들어가 보니 웅장한 동굴이 있었던 것이죠. 2년 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당당히 등재된 이 동굴의 유일한 입구는 아직도 이 전신주 아래 구멍입니다.

토끼를 따라 신비의 나라를 다녀온 엘리스처럼, 취재진들도 다시 전신주 구멍을 통해 현 세계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전신주 구멍 철문이 닫혔고, 올해 여름의 끝자락 마음 한 켠에는 동굴 속 시원한 바람과 함께 태곳적 신비의 잔상들이 깊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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