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가파른 것은 진정됐던 농산물 가격이 장마 탓에 다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속에 '휘발유·경유 100원 인하'가 7월 초부터 종료된데 따른 고유가 현상도 체감물가 악화의 원인이 됐다.
가뜩이나 집세, 외식비를 포함한 서비스요금, 가공식품 물가의 상승세로 근원물가가 훌쩍 뛰어오른 가운데 농산물과 석유류에서 다시 충격이 가해진 형국이다.
공공요금의 줄인상마저 예고돼 있어 정부 전망대로 9월 이후 진정세에 접어들 수 있을지는 물론 하반기 물가상승률을 3.7%로 묶어 연간 4% 수준에서 선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장마로 물가 고통 가중…'차이나플레이션'도 불안
농산물 가격 폭등은 강수 기간과 양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초특급 장마' 탓이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장마는 이미 1년 강수량의 절반이 넘는 비를 퍼부었다. 작물이 물에 잠기거나 햇볕을 보지 못하면서 제대로 자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장마가 끝나도 태풍이 기다리고 있어 안심할 수 없다. 설령 날씨가 좋아져도 농산물은 생육기간이 필요하고 하우스 등 시설의 훼손이 심해지면 공급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올해는 추석(9월12일)이 예년보다 열흘 이상 일러 우려를 증폭시킨다. 추석 선물이자 제수용품인 사과나 배는 본격적인 수확시기가 9월 중순 이후여서 물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솔로몬투자증권 신병길 이코노미스트는 "하절기엔 태풍, 장마 등 기상악화로 농축수산물의 물가가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지난 4, 5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끌어내렸던 농축수산물과 석유류의 추가 하락은 어렵고 수요 측 물가 상승압력이 확대되면서 상반기보다 오히려 물가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농산물 피해가 아직 심각하지는 않다고 보지만 기상이변이 잦아진 추세를 감안해 장마 이후 태풍과 폭염, 가뭄 등에 대비한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이용재 물가정책과장은 "장마 이후 기상변화를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는 게 농업관측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면서 "장마때 수분을 머금은 채소가 폭염 등에 노출되면 병충해에 취약해져 공급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발 인플레이션인 `차이나플레이션'도 불안 요인이다. 지난해 한국의 총수입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6.8%에 달했다. 부품·소재 산업에서 중국 비중은 24.7%에 달했고,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농수산물 중 15.3%가 중국산이었다.
중국 물가가 1%포인트 오를 때 국내 수입물가가 0.64%포인트 상승하며 이는 국내 소비자 물가를 0.06%포인트 끌어올리는 것으로 한국은행은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중국에 대한 부품·소재와 농수산물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발 가격 상승은 국내 수입물가 상승을 거쳐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국제유가 10% 상승 시 소비자물가를 0.2%포인트 올리는 영향을 주는 것을 비춰보면 차이나플레이션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고유가에 따른 부담은 커졌다. 두바이유 현물가격이 배럴당 110달러 안팎의 높은 수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달초부터 ℓ당 100원 할인 조치도 끝나면서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요금이 '태풍의 눈'…하반기 3%대 가능할까
이에 따라 정부가 지난달 4.0%로 상향 조정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상반기에 4.3%였으니 하반기에 3.7%여야 연간 4.0%가 되지만 현재로선 3%대로 떨어지는 게 요원해보이기 때문이다.
7월 물가상승률이 5%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오름세가 서비스요금으로 번지는데다 추석물가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더욱이 공공요금 인상이 대기중이다. 정부는 이달 전기요금 인상계획을 시작으로 우편, 열차, 도로통행료 등 주요 공공요금 조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동안 쌓인 적자 탓에 요금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수준까지 왔기 때문이다.
다만, 공공요금 인상 폭을 더 낮추거나 인상 시기를 미룰 가능성도 제기된다. 식량작물로 분류되는 쌀, 콩, 고구마는 물론 삼겹살 가격이 높은 수준에서 장마로 채소 값이 급등하는 돌발변수까지 가세한 사정 때문이다.
공공요금의 오름폭이 크면 인플레 기대 심리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정부로선 부담이다.
재정부 이용재 과장은 "전체적인 공공요금 인상 수준은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전기료 같은 경우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인상 폭을 최소화해 에너지절약의 메시지를 전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서민 체감도가 매우 높은 식품·외식물가에 중점 대응하고 있다.
윤상직 지식경제부 1차관은 지난 14일 대형 유통업체 대표들을 만나 장바구니 물가안정을 위한 협조를 요청한데 이어 임종룡 재정부 1차관은 15일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휘발유 소비자가 인상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며 가격 인하를 압박했다.
정부는 아울러 농림수산식품부를 중심으로 농산물 수급관리를 강화하고 불안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확대 등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물가 오름폭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물가가 9월쯤에는 3%대로 내려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지만 장마 등 기상요인으로 인한 농산물 가격 급등세와 공공요금 인상요인, 중국의 인플레 압력 등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해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