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려면 유엔 사무총장을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1일(현지시간) 연임안이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뒤 뉴욕 특파원들과 만나 자리에서 한 얘기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은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어려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임안에 대해 총회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신속하게 처리해 준 데 대해 "한 달에 지구 한 바퀴씩 1년에 지구 12바퀴를 돌고, 매일 정상급 인사들과 전화 또는 만남을 갖고, 1년에 500회쯤 외무장관 이상 각료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생긴 신뢰관계가 바탕이 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 총장은 특히 자신의 연임에 큰 격려와 힘이 돼준 이명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 국민에게 감사를 표한다면서 "한국이 유엔 가입 20주년을 맞아 경이적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반 총장과의 일문일답.
--안보리 이사국은 물론, 유엔 5개 지역그룹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고, 연임안이 통과된 후 회의장에 들어설 때 모든 회원국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소회는 어떤가.
▲회원국들이 적극적으로 성원해 준 데 대해 깊은 감사와 겸허한 마음 느낀다. 사무총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회원국들이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남북한 관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반 총장의 재선을 축하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안다. 2기 임기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어떤 복안이 있는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안정에 대한 내 입장은 당사자들이 직접 대화를 통해 교류·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비핵화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은 문제 해결의 메커니즘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측면 지원해 나갈 것이다.
지난 4년 반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앞으로 2기 사무총장으로서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보겠다.
북한 당국은 나의 방문에 대해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제 나름대로 적절한 시기와 현안 해결에 대한 기대를 봐가며 결정할 것이다.
--반 총장의 리더십이 조용한 외교에서 올해 아랍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적으로 강한 리더십, 드러나는 존재감을 보였다. 향후 리더십은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지.
▲현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여러 다양한 방법과 수단이 동원될 수 있다. 소위 조용한 외교든, 적극적 외교 든 이런 것들이 겸해서 사용되어야지 어떤 하나만 한다는 것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안된다. 그동안 나는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 공통의 가치에 대해서는 강한 목소리를 내왔고, 정치제도나 인권보호 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랍 민주주의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측면에서 나온 것이다.
앞으로도 문제의 사안과 배경을 깊이 연구해 그때그때 적시에 가장 유효한 방법이 어떤 것인지 연구해 나갈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나.
▲'당신은 사무총장을 즐기느냐',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하냐'란 질문을 자주 받는데, 행복하려면 유엔 사무총장 안 하는 것이 낫다. 물론 보람은 느낀다. 그러나 자신이 행복이나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것이 낫다.
세상에 수많은 인재(人災)들 있는데, 어떤 때는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참혹하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울적하고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세계 각지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한다. 어려운 이들에게 교사도 없는 학교에서 공부했던 내 과거를 설명하면서 국제사회가 다 도와주도록 노력하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곤 한다.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을 '세상에서 가장 불가능한 직업'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수긍이 간다. 엄청나게 곤란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다. 192개 회원국이 모두 자기들의 주권을 바탕으로 얘기한다. 그래서 '가교자'(架橋者.bridge builder)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오는 9월 유엔 총회에서 2기 청사진을 밝히겠다고 했는데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어젠다는 무엇인가.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한 지속개발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세계는 물 부족, 에너지 부족, 식량 위기, 보건 문제를 따로따로 여러 포럼을 통해 처리해 왔는데 이런 현안들은 모두 연관이 돼 있다. 이런 연관된 문제를 좀 더 광범위하고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세계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도 중요 어젠다가 될 것이다.
이밖에 핵 없는 세상, 질병 예방 등도 유엔 회원국들과 깊은 대화를 하면서 유엔 총회 때 비전을 제시토록 하겠다.
--연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의외로 회원국들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호응을 받아서 감사하고 고무돼 있다. 4년 반 동안 사심 없이 회원국들의 고충,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국제사회가 전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직접 방문하거나 각국 정상들과 부단하게 대화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지구 한 바퀴씩 1년에 지구 12바퀴를 돌고, 매일 정상급 인사들과 전화 또는 만남을 갖고, 1년에 500회쯤 외무장관 이상 각료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생긴 신뢰관계가 바탕이 된 것 같다.
연임 선언하고 나서 각국 정상들이 봇물 터지듯 지지하겠다고 얘기해 왔고, 편지 보낸 정상들 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이 국제사회에 어떤 측면에서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공적 개발금을 많이 지원했고, 평화 유지군에도 꽤 참여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한국의 기여도는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 많은 개도국이 저의 얼굴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도 보고 대한민국 사람으로서도 본다. 경제개발 민주주의 성공한 나라의 사무총장으로 봐서 심적으로 부담감을 갖고 있다.
지원은 여유 있을 때 하는 것보다 여유 없을 때 하는 것이 훨씬 값지다. 이건 자선이 아니다. 인류 공동 발전에 대한 투자다.
한국에 대한 기대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느낀다. 한국은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내년에 핵안보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한국의 위상은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자랑할 만하고 인정할만한 위치에 있다.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고방식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있을 때도 (이 문제를) 강조했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유엔 사무총장 입장에서 발전된 조국의 어떤 적극적 기여가 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뉴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