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전용기를 타고 귀국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 내부에 만연한 부패와의 전쟁'을 재차 강조했다.
그룹 미래전략실의 감사·인사팀장을 교체해 경각심을 높이는 수준에서 끝내지 않고 모든 계열사에서 사소한 부정·비리나 나태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채찍질을 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삼성의 미래 먹을거리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해봐야" = 삼성테크윈의 부정 사례를 계기로 이 회장이 몇 차례에 걸쳐 그룹 전반의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질책하고 관련 최고경영자(CEO) 등이 스스로 물러나면서 삼성의 전 계열사 임직원들은 꽁꽁 얼어붙었다.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식사나 골프 약속까지 취소하면서 몸을 사리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이처럼 임직원들이 지나치게 긴장하자 각 계열사 CEO 등이 나서서 신입사원 하계 수련대회나 '삼성 슈퍼스타S' 등의 이벤트를 통해 임직원 사기를 살려주려 진력했다.
이 정도면 이 회장의 진의가 충분히 전달된 만큼 미래전략실이나 계열사 감사팀을 통해 부정부패 사례는 철저하게 살피되, 더는 임직원들을 압박하는 강도 높은 발언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었다.
그러나 이날도 이 회장은 '삼성 전체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인적 쇄신 등 후속조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계속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미래전략실의 경영진단팀과 인사지원팀장을 바꾼 데 이어 미래전략실과 각 계열사의 감사팀을 강화하고 전반적이고 강도 높은 감사를 벌여 그 결과에 따라 대규모 인적 쇄신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감사팀 강화 방안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경영진단팀을 별도 조직으로 하는 것을 포함해 전방위적인 기능 강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룹과 계열사 감사팀의 진용이 갖춰지면 외부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그간 크고 작은 문제가 발견된 곳을 중심으로 환부를 도려내는 작업이 우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계열사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경영진단이 다시 실시될 가능성도 있다.
◇'도쿄 구상'은 없나 = 이 회장은 이날 "남의 사고 난 곳에서 무슨 구상 같은 것을 하느냐. 그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일본에서의 행보에 대해서는 "늘 만나는 분을 만났고, 특별히 지난번 대재해 때 위로해야 하는 분을 만나 위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외 출장 때면 항상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의 손을 꼭 잡고 입출국했던 이 회장은 이번엔 홍씨나 박필 비서팀장도 대동하지 않고 '나 홀로 출장'을 다녀왔다.
그만큼 삼성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고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과거에도 이 회장은 전략적인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일본에 머무르면서 숙고하고 현지 지인들의 조언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이날 삼성전자 실적과 관련해 "상반기 실적은 조금 떨어질 것"이라고 했고 하반기 경영 전망에 대해선 "계획대로 될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국내외 경쟁사의 견제와 주력 제품인 반도체 및 LCD(액정표시장치)의 가격 하락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반도체나 LCD, 휴대전화 등이 모두 경기에 민감한 제품인 만큼 하반기 세계 경제가 급속히 회복되리라고 낙관할 수도 없는 상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 회장이 일본에서 학계나 전자업계 지인 등을 만나 이 점을 고민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삼성전자가 여전히 글로벌 전자업체 1위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기는 하지만 1년 후, 10년 후에도 같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미래 먹을거리'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공산이 크다.
아울러 화학·금융·중공업·건설 부문 등도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는 방안이나 3세로의 경영권 승계 문제 등도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그가 직접 경영을 챙기겠다며 화·목요일에 꼬박꼬박 정기출근한 지 2개월째 되는 날이고, 또 내년 이맘때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던 '신경영 선언'을 한지 20년이 되는 시점이어서 그가 일본에서 가다듬은 구상을 어떤 식으로 펼쳐나갈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