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만 3년을 꼬박 살아오면서 요즘처럼 이 나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질서와 소음, 매연, 더위도 감당하기 만만치 많은데 대개는 무책임하고 게으르고 잔 속임수 잘 쓰는 현지인들을 상대해 오면서 솔직히 정 붙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오랜 독재 후유증 탓에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와 비능률, 관료주의, 패배주의 등을 겪으면서 이 나라에 과연 희망과 미래가 있을까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민혁명이 이 나라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을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표정에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고 축 처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와 청소를 하는가 하면 나무나 담벼락에 국기를 페인트칠하며 새 출발에 대한 의지와 시민혁명을 일궈낸 자부심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과도 정부를 이끌고 있는 군부에 대한 압박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30년 독재자 무바라크의 항복을 받아낸 지 두 달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금요일 마다 '민주화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정치개혁을 차질없이 이행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군부도 부정부패에 연루된 무바라크의 측근들을 대거 구속한 데 이어 무바라크 부부와 두 아들마저 잡아 들여 재산을 몰수하고 사법처리 의지까지 내비치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바라크 자신이 군 출신이고 현재의 군 수뇌부가 오랜 세월 무바라크의 핵심 추종 세력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기대를 뛰어 넘는 행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은 지난 시민혁명 당시에도 결정적인 순간에 무바라크를 설득해 퇴진을 이끌어 낸 것으로 알려져 이집트 국민의 신뢰를 얻은 바 있습니다.
예정대로 정치 일정이 진행된다면 오는 9월엔 총선이, 그로부터 두 달 안에는 대선이 치러집니다. 자유롭게 치러지는 첫 선거를 앞두고 여러 정파들은 새 이집트 건설에 앞장서기 위해 선의의 경쟁이 한창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980년의 이른바 '서울의 봄', 또는 1987년 상황을 연상하시면 될 듯합니다. 독재를 무너뜨린 자신감에 새 출발에 대한 의욕과 기대가 더해져 온 나라가 들썩들썩하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경제입니다. 이집트 경제를 떠받들어 온 관광산업이 아직도 빈사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고 실업률도 12%로 치솟았습니다. 정경 유착으로 소수가 독점해 온 경제 구조가 정상화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다시 돌아와야 해결될 문제인데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사우디와 함께 아랍권의 맹주를 자임해 온 이집트가 모쪼록 순조롭게 정치, 경제 개혁에 성공해 이 지역의 진정한 리더로 자리 매김하고 인류 문명의 발상지에 걸맞는 영화를 되찾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