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강 변에 자리 잡은 ○○아파트. 이 아파트 9층의 이복순(60.여)씨 집에 들어서자 생후 9개월 난 여자 아기가 유모차에 탄 채 방긋 웃으며 반긴다.
홀트아동복지회 위탁모인 이씨가 돌보고 있는 53번째 '천사'다. 이 아기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이씨의 품으로 넘겨졌다.
여느 버림받은 아기들처럼 얼마 뒤에는 국외든, 국내든 새 부모를 찾아 입양을 떠나야 할 비운의 운명이다. 그러기에 아기를 바라보는 이씨의 눈길은 애틋하기만 하다.
"그저 진심으로 '사랑한다, 예쁘다'고 말해주며 쓰다듬고 안아 주는 게 전부예요. 내가 그 이상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슬프네요."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1남2녀를 둔 이씨는 16년 전 위탁모로 활동하던 지인이 사흘만 아기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들어줬다가 '천생 엄마'의 길을 걷게 됐다.
이씨는 "당시 아이들이 모두 중.고교를 다니고 있을 때라 공부에 지장이 있다고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아기 웃음 소리가 잊혀지 질 않았다"며 "친부모,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 입양될 아기들에게 잠시나마 사랑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돌 전후의 유아를 맡다 보니 두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목욕을 시키느라 다른 일에는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밤새 몇 번이나 깨어나 보채는 아기들을 돌보기 위해 남편과도 각방을 써야 했다. 행여 아기가 다칠 새라 거실에는 소파 외에 다른 가구는 모두 치웠다.처음에는 아기 한 명도 힘에 부쳤지만 어느새 '이골'이 나면서 통상 두 명을 한꺼번에 맡아 키운다.
이씨는 "아기 두 명을 키우면 번갈아 울고 정신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손을 덜 탄다"며 "말 못하는 아기들이 뭐가 좋은지 서로 쳐다보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까지 이씨의 사랑을 듬뿍 받고 떠나간 아기는 52명.
그 중 둘은 장애가 심해 복지시설로 옮겼고, 셋은 국내로 입양됐으며 나머지는 모두 국외로 입양됐다.
그는 "똑똑한 아이를 입양 보낼 때는 서운해도 잘 살 거라는 위안이 되지만, 장애아를 보낼 때는 또다시 버림받는 건 아닌지 걱정이 돼 종종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미혼모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했더라도 제발 열 달 동안 술, 담배를 참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서 아이를 정상으로만 낳아달라"는 당부다.
위탁 아기들 중 지능이 떨어지거나 다리 길이가 서로 다르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질환을 갖는 등 선천적 장애를 안고 있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작년 10월 위탁모 경력 15년 차를 맞은 이씨에게 열흘간 유럽여행을 선물했다.
그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룩셈부르크를 돌며 자신이 키우다 입양을 보낸 아이 7명을 양부모와 함께 만나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오는 7월 환갑을 앞둔 이씨는 "낳아준 엄마는 아니지만 키워준 엄마라도 보러 온다면 언제든 환영"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아기들을 돌보고 싶다"고 소망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