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자로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리노 김현웅의 사직서가 수리되었다. 3월 말, 같은 수석발레리노 이동훈과의 불미스런 폭행사건이 원인이다.
이들은 술자리에서 말싸움을 하다가 김현웅이 이동훈을 때려 이동훈의 턱뼈를 다치게 했다. 입원 치료를 시작한 이동훈은 복귀까지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고 김현웅은 책임을 진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국립발레단은 졸지에 수석 발레리노 3명중 2명을 기용할 수 없게 되었고, 4월 22일부터 선보인 왕자호동에서는 국립발레단 소속이 아닌 김용걸 교수와 발레리노 송정빈으로 캐스팅을 바꿔야 했다.
급하게 캐스팅한 김용걸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는 파리국립오페라단 출신의 베테랑이지만 3년 가까이 전막 공연을 하지 않았다. 이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발레리노 송정빈은 경험이 적고 병역 특례로 훈련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짦은 머리를 가발로 감춰야 했다. 국립발레단의 2011 지젤 공연이 전석매진 되는 등 발레공연이 전성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라 아쉬움이 더한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발레리노가 그렇게 없나?
'블랙스완'이나 '마오의 라스트댄서' 같은 영화를 통해 발레가 얼마나 아름다운 춤인지 다시 보게 된 사람들이 많다. 문화부 일정을 취재할 때 오페라는 아직도 어색하지만 발레는 정말 환상적인 장르였다. '춤'은 언어 이전의 원초적인 언어라고 표현하는데, 바로 그 말이 정확하다. 동서양의 '자기 것' 장르 구분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벽은 있다. 소위 본고장이라고 하는 나라에서는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 무용수가 뭘 하겠느냐는 선입견도 있다. 그 선입견을 깰 수 있게 해 준 한국 발레 무용수들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한국이라는 토양자체가 대단하다고 평하기는 힘들다. 그냥 쉽게 생각해 보자. 사위가 발레리노라면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국 어르신이 얼마나 계실까. 얼마 전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 발레리노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들이 얘기한 적이 있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는데 '남자가 무슨 춤쟁이냐', '어떻게 먹고 살거냐'라는 질문을 받는 일도 있고, 고등학교 때는 '게이냐', '쫄쫄이 입냐' 같은 질문도 많이 받았단다. 한마디로 알려진 게 별로 없는데 편견만 많은 존재들이다.
주요 부위를 감싸는 '서포트'와 '타이즈'는 왠지 발레리노들이 부끄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했다. '서포트'는 발레리노들이 입는 보정속옷의 일종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발레리노들이 도약하거나 회전할 때 움직이는 신체부위가 있으면 선이 망가질수 있는데, 그 부분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T팬티에 부드러운 소재를 넣어 볼록하게 보이는 서포트는 발레의 오랜 전통이 빚어낸 복식이다. 발레리노들의 아름다운 춤의 도약과 동선을 도와주는 복장이라고 보면 된다. 개콘의 '발레리NO' 코너는 이 서포트에 대한 오해를 웃음거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안타깝다. 발레리노에 대한 오해를 부추긴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발레리노가 친숙한 소재가 되었다는 점은 환영이다.
학창시절에 발레리노를 꿈꾸는 친구가 있었다면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었을까. 나도 혹시 친구의 목표와 꿈을 놀림거리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니 식은땀이 다 난다. 발레리노가 제대로 서기 힘든 토양임을 나부터 반성한다. '마오의 라스트댄서'를 본 사람들의 평은 대부분 '발레리노가 그렇기 멋있는지 처음 알았다'란다.
이 영화의 주인공 리춘신은 11살 때부터 무용학원에서 발레를 시작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 비해 한국 발레리노 김현웅과 이동훈은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공부했다고 볼 수 없다. 김현웅은 고3때 이동훈은 중2 때 발레를 시작했다. 타고난 신체 조건이 이들을 이 자리까지 이끌었다. 인터뷰를 할 때면 '너무 일찍 발레를 시작했다면 지금까지 했을까'라며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면, 감당해야할 편견의 시간들이 늘어났을 것 같다는 말이다.
발레리노 김현웅과 이동훈의 폭행사건은 이들이 감당해야 했을 과중한 압박감과 오해의 시간들도 한켠에서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한다. 물론 술자리 잘못은 분명 잘못일 뿐이다. 발레리노의 힘겨운 현실이 면죄부가 아니다. 단지 그들을 평하기 전에 이번 계기로 그들의 현실도 돌아봤으면 한다. 발레리노가 얼마나 멋있는지 알게 된 사람들이 발레리노를 지켜 주었으면 한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키우는 남자 무용수들에게 편견의 짐을 주지 말자. 그들이 아름다울수록, 또 한없이 멋있어 질수록 그들을 보러가는 우리도 행복해진다.
취재협조 - 국립발레단
[영상설명]
-국립발레단의 최근 공연인 '백조의 호수'와 '지젤'중에서 발레리노의 공연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다.
발레가 여성적인 춤만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남성의 춤에서 시작한 발레는 남성미를 보여주는 많은 장면들이 있다. '백조의 호수'에는 왕자, 악마, 광대라는 남자 주인공들이 있다. 남성 발레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명장면들을 소개 한다.
1막 왕자의 생일날 광대가 선보이는 춤 장면
2막 흑조와 백조 사이에서 갈등하는 왕자가 악마와 싸우는 모습
'지젤'에는 시골마을의 처녀 지젤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왕자 알브레히트가 등장한다.
1막 왕자의 신분을 속이고 마을 축제서 춤을 선보이는 왕자
2막 왕자 때문에 죽게 된 지젤의 영혼에게 사죄하는 알브레히트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