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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열 받아서 상장했다"…중소기업 인력난 본질은?

소수의 특권의식-다수의 피해의식 부추기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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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신문을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기사를 발견했다. 밀폐용기 하나로 성공한 자수성가형 대표 CEO 락앤락 김준일 회장의 인터뷰였다. 어떻게 지금의 성공을 일궈냈는지.. 등을 묻다가, 회사 발전에 걸림돌은 뭐냐고 질문했더니 김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제때에 인력 충원이 안 돼요. 1년에 4개국에 신규 법인을 여는 속도이니 인재가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이라고 기피합니다. 대기업보다 진급도 빠르고, 해외 주재원은 4년 정도 빨리 나가요. 업무의 폭과 깊이가 다른 거죠. 그런데도 내용은 따지지 않고, 외피만 봐요. 어느 회사 배지를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죠.

그래서 상장했어요. 진주를 못 알아보기에 열 받아서.”

(중앙일보, 4월 23일자)

상장한 이유가 자본 확충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인력 충원 때문이란다. 중소기업의 인력난의 원인, 일자리를 보는 구직자와 구인기업간 미스매칭이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고착화된 현실을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현실이 더 차갑게 다가오며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중소기업이 흔히 쓰는 표어가 '9988'이다. 대한민국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근로자 88%가 중소기업에 몸담고 있는 현실을 나타내는 것.  그런데 근로자 열에 아홉이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현실에서 왜 중소기업은 항상 기피 대상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체면 문화'가 큰 이유다. 대학에서 '축산학과'를 '생명과학과'로 바꾸니 지원자가 몇 배로 늘었다는 얘기는 '간판', '이름'을 중시하는 우리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연봉이 같아도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중매가 잘 들어오고,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고들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느니 차라리 백수로 지내는 게 낫다'는 전근대적 체면 의식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버젓이 존재한다.

국내에 300만 개 정도의 기업이 있는데 300인 이상 대기업은 2700여 개, 500인 이상 초대기업은 700여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중소기업이다. 이런 상황인데 '대기업에 다니면 winner'이고 '중소기업에 다니면 loser'라도 되는 듯한 불합리한 인식이 팽배해있다.

결국 중소기업 종사자들이 '피해의식' 비슷한 것을 느낀다는 것,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최선의 일이라고 자부심을 갖고 해도 힘든 일들이 많은데 항상 '난 여기있을 사람이 아닌데,..' '이게 최선일까' 라는 회의감에 시달린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즉 사회 대다수가 종사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자신이 '소수집단, 마이너리티(minority)'라는 인식을 품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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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라는 압도적 우위에 있는 집단이 1%에 근원을 알 수 없는 패배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 전체의 건강함을 해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왜냐하면 스스로 뭔가 빼앗긴듯한, 피해를 본 듯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듯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중소기업'이라는 WORDING을 다시했으면 어떨까 항상 생각해보곤 한다. 이 단어 자체가 '작은, 약한'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약자인, 열세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풍긴다. 영어에도 'SME(small and medium enterprise)'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로 이미 그렇게 고착화돼 쓰이고 있다. 뉴스에서도  '중소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 '중소기업은 갈 곳이 없다' 등 중소기업을 보는 시선은 '피해자'이고 '약자'에 맞춰져 있다.

사실 그런 시도가 있어왔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지명도 떨어져도 높은 점유율 가진 수출형 중소기업)', '강소기업(작지만 탄탄한 기업)', '스몰자이언츠(small giants:강소기업과 비슷)', '가젤형기업(gazelles company: 근로자 10인이상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뛰어난 기업)'  등 대부분 뜻은 일맥상통한다. '규모는 작아도 경쟁력은 남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떤 것도 '중소기업'을 대신할 단어로는 쓰이지 않고 있다. 법 조항 자체에 중소기업법이 명문화돼 있고 행정 조직도 중소기업청이 있고 중소기업중앙회 등 각종 이익단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가 산다"는 말은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근간을 흔드는 인력난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지만 여전히 중소기업 1년내 이직률이 50%를 넘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 일자리 정책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려면 '규모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minority라는 냄새가 짙게 밴 단어'로 변질된 '중소기업'이란 말을 대신할 묘안을 찾는데 함께 고민해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벤처기업' 같은 말이 좋았다.(물론 거품이 꺼져서 고난을 겪긴 했지만...) 중소기업청도 '미래기업청'같이, 좀 더 지향점을 제시해 주는 쪽으로 아이디어를 내볼만하다.

좋은 인력은 기업 발전의 기본이다. 각종 지원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력이 모이는데 방해가 되는 사회적 편견을 고쳐나가는 시도도 병행돼야 한다. "사회적 편견이 문제다", "체면의식이 문제다"라는 말만 백번 해서는 변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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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선 기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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