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무려 4천억 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당한 사람은 해운업을 하는 권 모씨입니다. 권씨는 현대차 일본 지사에 근무하다가 환차익을 이용해 선박용선업을 하면 돈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지난 91년 회사를 차렸습니다.
이후 일본의 초저금리 시대와 선박업 호황과 맞물리면서 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선박을 사들인 뒤 이를 임대해 주고 돈을 버는 방식으로 회사를 급성장시켰습니다. 한때 보유했던 선박만 대형 벌크선을 포함해 280척이 넘어 업계에서는 '아시아의 선박왕'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160여 척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국내 해운업계 1, 2, 3위 업체인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 팬오션 등이 보유한 배가 5~60척에서 90척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아실 것입니다.
하지만 권씨는 철저히 베일에 쌓인 채 경영을 했습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 것이 그 이유라고 보고 있습니다. 권씨는 버뮤다 등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이른바 페이퍼 컴퍼니)를 차려놓고 영업하다가 회사가 커지자 역시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홍콩에 외국 법인을 세웁니다.
그런 다음 국내 사무실은 외국법인의 대리점 형태로 운영하면서 자신은 180일 이상 국내에 머물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180일 미만이면 세금을 피해 갈 수 있는 비거주자로 간주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거주 집은 친인척 명의로, 국내에 투자한 호텔과 빌딩 등은 외국 법인의 명의로 구입하면서 그동안 국내에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국세청에 적발돼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소득 1조 원 가까이를 탈루했다는 이유로 4천 101억 원을 추징당하게 됐습니다. 지난 2003년 SK 그룹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추징됐던 액수와 맞먹는 규모를 한 개인에게 추징했으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으실 겁니다. 권씨의 개인자산은 1조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제가 권씨의 서울 사무실을 가봤더니 거의 유령회사였습니다. 강남의 아주 대형 건물의 한 층 절반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회사 간판은 건물 밖에도, 심지어 복도에도 없었습니다. 운영하는 여행사는 다른 국내 유명 여행사 판매점이라는 간판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가려뒀습니다. 현행 법상 국내에서 실질적인 대리인 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회사가 있다면 '비거주자' 조건이 적용되지 않아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이렇게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었습니다.
세금 추징 발표 이후 권씨는 자신의 입장을 잘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몇 몇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 마디로 "세금 못 낸다" 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비거주자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도 외국에 내야지 왜 한국에 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년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이 제공하는 온갖 사회간접자본을 이용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국내 대형 법무법인에 이번 사건을 의뢰했습니다. 비슷한 경우로 세금을 못내겠다고 했던 투기자본 론스타처럼 법정 다툼을 해 보겠다는 겁니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권씨에 대해 "절세와 탈세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권씨처럼 경영을 한다면 누가 세금을 내겠느냐"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고 반드시 추징한 세금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마 길고 치열한 법정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권씨는 세금을 일부 덜 낼 수도 있고 국세청이 추징한 세금을 모두 받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국내 대형 법무법인은 상당히 짭잘한 소득을 올릴 것이라는 점입니다. 국민의 4대 의무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이번 다툼이 어떻게 결론날지 관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