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첼시가 3월 18일 경기도 파주에 프리미엄 아울렛을 개장했습니다. 경기도 여주에 이어 신세계 첼시의 2호 아울렛입니다. 여주가 경기도 동북권을 장악했다면, 파주는 경기도 서북권 의류시장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대형 아울렛의 등장은 중소 의류상가를 바짝 긴장시킵니다. 신세계 파주 아울렛은 파주시 금촌동 의류상가(5km), 고양시 덕이동 아울렛(14km), 김포시 장기동 아울렛(17km)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모두 자유로의 동선에 있으므로 10km 안팎은 차로 10~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문을 열었던 신세계 첼시 아울렛은 첫 주말에만 16만 명이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신세계 첼시는 개장한 뒤 닷새 만인 3월 23일, 갑자기 사업자등록을 변경했습니다.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변경 신고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바뀐 사업자등록증에 따르면 신세계 첼시는 파주 아울렛의 업태를 '부동산업'으로, 종목은 '임대'로 신고했습니다.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은 한 마디로 '부동산 임대업'이라는 것입니다. 커다란 아울렛 건물을 지어놓고 입점 업체들과 개별적인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임대차 계약서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형 아울렛은 '의류 매장'의 이미지가 짙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실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신세계 측은 왜 사업자등록증을 바꿨을까요. 원래 사업자등록증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걸까요.
신세계가 지역 중소 의류업체와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 절차'를 둘러싸고, 지난해 6월부터 벌여온 밀고 당기기에 해답이 있었습니다. 신세계는 올해 2월과 3월, 중소 상인들과 5차례에 걸쳐 자율 교섭을 벌였습니다. 중소 의류업체는 신세계 측에 "우리가 파는 것과 중복되는 브랜드는 좀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3월 11일 5차 협상에서 중소 상인들은 "중복 브랜드를 20개만 팔아달라"고 신세계에 요구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들도 장사하면서 생계유지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습니다. 신세계 측은 상인들과 중복 브랜드의 숫자를 놓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5차 협상에서 결렬 선언했습니다.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열흘 정도가 지난 뒤에, 갑자기 사업자등록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신세계는 그때부터 본인들이 중소기업청의 '사업 조정'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인들은 '부동산 임대업자'이므로 의류를 판매하는 중소 상인들의 피해와 무관하고, 따라서 사업 조정의 법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서류만 보면 그렇게 주장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부동산 임대업자 입장에서 옷을 파는 상인들과 '사업 조정' 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신세계는 중소기업청에 보낸 공문에서도 이 변경된 사업자등록증을 첨부해 이와 같은 논리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신세계가 애당초 신고한 사업자등록증은 대체 어떻게 되어 있었을까요. 국회 지식경제위 강창일 의원실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신세계는 당초 2010년 12월 13일 본인들의 업태가 '도매업, 소매업, 부동산업'이고 종목은 '의류, 임대'로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본인들도 처음에는 신세계 아울렛이 '의류 도소매업'이라고 세무서에 신고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신고했느냐는 질문에 신세계 측은 "국내에 정통 아울렛이 처음 도입된 상황에서, 사업을 개시하면서 포괄적으로 도소매업과 부동산업을 함께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신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의류 도소매업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과연 의류 도소매업은 무엇이고, 부동산 임대업은 무엇일까요. 저는 신세계 측에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신세계 첼시 아울렛의 고유한 성격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세계 측은 '영업 비밀'이 드러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입점 업체의 브랜드를 가리고,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수수료율 등을 가리고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만, 신세계 측은 이 요청도 거절했습니다.
신세계 측은 본사가 입점 업체의 매출을 직접 관리하지 않으면 부동산 임대업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본사가 입점 업체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매출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그것들이 계약서에 명시돼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신세계 측은 자신들이 입점 업체로부터, 매달 매출액과 연계돼 있는 수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책상 앞의 법적 논리와 별도로, 실제 상인들의 피해는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주 금요일에 갔던 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아울렛은 신세계 첼시 아울렛과 직선거리로 14km 떨어진 곳이었는데, 신세계 개장 3주 만에 매출이 40~50% 가량 감소했다고 상인들은 주장했습니다.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물량 확보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덕이동 의류상가와 신세계 아울렛 모두 이월상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이월상품의 물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중소 의류상가가 판매할 옷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GAP 본사는 한정된 이월상품을 신세계 쪽에서 판매하기 위해서 덕이동 의류상가 내 매장의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당시 매장은 이미 철거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땡처리'에 들어간 매장도 속속 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실제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중소 상인들은 과연 누구와 사업 조정 협의를 해야 하느냐고 신세계 측에 물었습니다. 신세계 관계자는 파주 아울렛에 입점한 해당 브랜드와 사업조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신세계에 입점한 브랜드가 수백 개인데 어느 브랜드와 사업조정을 하라는 것인지 당혹스러웠습니다. 게다가 고양 의류상가에 있는 나이키 매장이 파주 아울렛에 있는 나이키 매장을 상대로 사업조정을 신청하라는 주장까지 내놓았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신세계 측은 "양측 모두 독립적인 사장님들"이어서 자기들끼리 사업조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얘기가 돌아왔습니다만, 신세계의 사업자등록 변경에 대해, 양측의 자율 조정을 바랐던 중소기업청은 격분했습니다. 신세계에 대해 야비한 짓이다, 어린애들 장난 같다는 직설적인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중소기업청은 신세계가 지난달 14일 '개업 일시 정지 권고'를 거부한 뒤, 곧바로 외부 기관에 용역을 맡겨 피해 실태 조사에 착수했고, 중재안 마련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중재안 마련에 2달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가령 신세계가 중복되는 20개 브랜드 정도는 빼달라, 는 내용의 중재안이 될 것입니다. 신세계가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소기업청은 신세계를 검찰에 고발할 수 있습니다. 처벌은 약합니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입니다.
신세계는 파주 아울렛의 사업자등록을 바꾸면서, 1호점인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의 사업자등록도 동시에 변경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신세계는 외부 법무법인을 통해 자사를 ‘부동산 임대업자’로 규정한 것입니다. 이 논리가 수용되면 신세계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중소 의류상인들의 반발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청의 사업 조정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중소기업청이 펄펄 뛰고 있으므로, 이 논리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검찰에 고발되더라도 신세계 입장에서는,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큰 타격이 없을 것입니다. 5천만 원 이하의 벌금만 내면 끝이고, 벌금을 내기 전에도 지루한 법적 공방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법적 공방이 마무리될 때쯤이면, 중소 상인들은 이미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럴 때 신세계는 경영상의 측면에서, 대-중소기업 상생법을 어기는 것이 현명하다고 자체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신세계는 '부동산 입대업자'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법적 논리를 동원하는 바람에, 현재 애매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본인들은 중소기업청의 사업조정 절차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중소 상인들과 합리적인 중재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화는 계속하겠다는 모순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것입니다.
신세계는 본인들이 약자라고 주장하면서, 중소기업청의 사업 조정에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해왔다고 강변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중소기업청이 더 약자입니다. 중소기업청은 중재안을 마련하고 신세계를 고발할 수 있긴 하지만, 그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소기업 상생법은 이렇게 대기업이 돈만 조금 들이면, 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 얇은 유리 같은 것입니다. 신세계는 상생법의 취지를 존중해, 대기업답게, 다시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옳습니다. 수익 감소보다 무서운 것은 부도덕의 낙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