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이 올해 들어 4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8일 이들에 대한 추모 열기와 함께 자살에 이르게 한 원인을 놓고 내부 구성원간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날 KAIST와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는 동료 학우가 자살하게 된 원인을 바라보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참여자들간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영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린 한 참여자는 "입학하는 순간부터 영어강의로 4년을 살았는데, 수업을 제대로 들었던 강의가 없었다"며 "많은 친구가 수업 때 '멍' 때리다가 혼자서 공부하고 힘들어한다. 전공 어떤 수업은 최고의 강의라고 평가받다가 영어강의가 되고 나서 그저 그런 수업 중의 하나가 되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KAIST 영어수업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린 참여자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KAIST의 큰 문제들 중 하나를 '영어수업'이라고 계속 나오는데, 솔직히 영어수업은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입학할 때부터 서 총장이 100% 영어 강의라고 설명했고, 재학생 일부분은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한국에서 영어로 수업하는 일류 공대를 다니고 싶어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참여자는 "이번 학생의 경우는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등록금과 관계가 없다.
그렇기에 등록금 정책도 문제가 있지만 제가 볼 때 더욱 문제 있는 건 카이스트 내 문화라고 생각한다"며 "사실 명문대인 만큼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고, 그걸 문제점으로 볼 수도 없다"고 진단했다.
KAIST에서의 생활에 대해 "공부밖에 할 수밖에 없는 반 감금된 삶과 지나친 레벨격차로 힘들어하는 삶, 어린시절부터 꾸어온 꿈을 앗아가는 삶에 문제가 있다"는 글도 올라왔다.
지난해 입학했다고 소개한 한 학생은 ▲차등등록금을 적용하되 수준을 조절 ▲재수강 학점 제한을 유지하되(B+), 재수강 개수제한 폐지 ▲엄격한 부.복수 전공 신청 및 유예기간 제공 ▲전과목 영어강의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전날 숨진 채 발견된 박모(19)씨에 대한 추모글도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숨진 박씨와 고등학교때부터 4년간 동고동락한 친구라고 소개한 학생은 "성적은 좋지 않았어도 미래에 대한 낙관만은 잃지 않았고, 누구보다도 번뜩이는 수학적 재능을 가졌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던 친구가 KAIST에 들어오고 나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며 "친구는 만날때마다 입버릇 처럼 '등록금 만큼은 내면 안된다, 부모님께 미안해서 안된다'고 말하더니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 했다.
한 학생은 "내가 속한 학교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네번째 일어나면서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다음번엔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잇단 비보에 뜨거운 슬픔을 감출 수가 없고, 마지막 선택으로 우리 곁을 비운 그 아픔에 공감하며 깊은 슬픔과 애도를 표한다"고 추모했다.
졸업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참여자는 "대부분의 학생이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기대와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을 것이고, 그래서 똑똑하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은 KAIST에서는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라며 "등록금 차등 제도 때문에 돈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 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대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