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창녀의 방인 듯 치장된 분홍색의 장식들 사이에 남성모델이 꽁꽁 묶여 있다. 작가의 사진 속에는 창녀가 남성으로 바뀌어 있다. 언뜻 보면 남성의 잘못된 권력성향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묶여있는 사람이 하필 남성이고 작가는 여성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생긴다.
그렇지만 섹슈얼리티나 남성 권력의 부적절함 같은 의미 뒤에 무언인가 엿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사람에게 있어서 '몸'이란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을 아닐까.
손정은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왜곡된 남성권력을 표현했다고 얘기한다. 물론 그런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몸'은 '마음'의 자유를 억누르게 하는 장치이다. 위험한 물건을 못 만지게 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다칠 수도 있는 아이의 '몸' 때문에 있는 것이다. 작품들도 나에게 새삼 '몸'을 조심하라고 외치는 듯 하다.
작가의 전시는 견디기 힘든 것들을 먼저 보여주면서 출발한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겪어야 했던 온갖 부조리들이다. 그리고 남성으로 표현된 부조리들에게 복수와 응징을 가한다. 마지막으로 일그러진 입이 되어버린 형상들이 뭔가 노래를 하면서 마무리 한다. 어렸을 때의 상상처럼 순백의 상태로 돌아갈 순 없지만 일그러진 형태로나마 다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몸’을 지니고 있고 이 '몸' 때문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아픔이나 고통도 ‘몸’의 느낌에서 출발한다. 영혼의 세계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이런 신체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오랜 꿈 때문이다. 하지만 '몸'은 가장 훌륭한 도구인 동시에 평생 지고 가야할 짐이다. 늙어감을 슬퍼하는 것도 몸이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삶의 일부분이다. 손정은의 작업은 '몸'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쾌락과 고통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취재협조 - 성곡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