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취재파일] "형편대로 내면 됩니다"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대표 이미지 영역 - SBS 뉴스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은 고민합니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먹을지, 누구와 먹을지 등등... 그 중에 가장 큰 고민은 '가격'입니다. 이제는 5천 원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점심값이 부담돼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가격도 싸고,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문턱 없는 밥집'이 소개됐습니다. 이 밥집의 가장 큰 특징은 돈을 마음대로 내면 된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유기농 채소를 식재료로 사용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윤은 나는지 궁금했습니다. 사실 운영이 되는지 더 궁금했습니다. 한 시민은 이 밥집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능한 곳이다. 이런 곳이 있다면 나에게 알려달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밥집은 2007년부터 성업 중입니다. 점심시간 (12시~1시반)이 되면 80~100명 정도의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갑니다. 메뉴는 오직 '비빔밥' 하나뿐이지만 들어가는 재료는 매일 바뀝니다. 물론 유기농 채소입니다. 팔당 유기농단지와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 등에서 직접 가져다 씁니다. '비싼' 유기농 채소를 값싸게 가져오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제값'을 치르고 가져옵니다.

식재료 가격을 바탕으로 비빔밥 한 그릇 원가를 계산해보니 4천 원이 넘었습니다. 제가 얼마를 내는지 여쭤본 손님들은 대부분 다른 음식점에 준해서 돈을 낸다고 했습니다. 대략 5~6천 원 정도를 이야기 하셨는데 하루 점심 장사를 하고 나면 보통 16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가 무인 계산대에 들어옵니다. 계산을 해보면 손님 한 명이 2천 원이 조금 넘는 돈을 내고 간 셈입니다.

그래서 이 밥집의 점심 매상 장부는 항상 적자입니다. 인건비를 뺀 원재료 값에 절반 정도의 돈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수지 타산이 맞을 리 없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저녁에는 일반음식점처럼 운영합니다. 삼합, 각종 전, 막걸리 등을 팝니다. 또 옆에 중고품 상점이 있어 그곳에서 난 수익을 밥집 운영에 보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2009년부터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이 돼 인건비 일부를 지원받아 운영에 숨통이 트였다고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돈을 안 내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최소 1천 원을 내야한다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진입장벽이 될 것 같아 없앴습니다.

이 밥집의 계산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돈을 내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되도록 근처에도 안 간다고 했습니다. 실제 지켜본 결과 대부분 사람들이 자유롭게 돈을 내고 갔습니다. 지갑을 놓고 왔다며 다음에 와서 내겠다며 그냥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모습이 어색하기 보다는 너무도 자연스러웠습니다. 형편이 어려울 때는 조금만 내고, 나아지면 더 내는 것이 암묵적 원칙입니다. 이 밥집을 자주 찾는다는 한 청년은 한 때 직업을 구하지 못했을 때는 돈을 내지 못하다가 일을 하면서 돈을 더 낸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이곳에서는 카드 계산도 가능합니다. 카드 수수료 때문에 한 번에 5천 원 이상 결제를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기사에서는 부각되지 않았지만 이 식당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음식물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절밥을 먹는 것처럼 숭늉과 무 김치를 이용해 그릇을 말끔하게 비워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탓에 손님들의 저항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돈을 내고 샀으니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도 보호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은 이내 수긍을 하고 잘 따른다고 합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추가루 하나까지 깔끔하게 제거했습니다.

이 밥집의 운영 철학은 간단합니다.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나눔' 입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조금' 더 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몸에 좋지만 비싸서 먹기 어려운 유기농 음식을 서민들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농가에도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처음에 사람들이 내는 돈이 일인당 평균 1천 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2천 원이 넘으니 희망이 보인다고 밥집 운영자는 말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착이 돼 수익도 나면서 인천에 2호점이 문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찾고, 취지에 공감에 나눔을 실천한다면 이런 '상상 속' 가게는 점차 현실이 될 것입니다. 처음 오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을 "도대체 얼마나 내면 되는지"였다고 합니다. 다들 재화의 가치만큼 돈을 지불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광고
광고 영역

되도록 적게 내면 좋겠고, 가격표가 없으면 불안한 현대인인 저도 문득 운영하시는 분의 속내가 궁금해졌습니다. 적정 가격이 어느 정도면 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솔직히 더 많이 내면 좋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돈이 더 들어오면 밥집 운영이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테니까요. 우문현답일까요? 돌아온 대답은 "형편대로 내면 됩니다." 였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김수영 기자 기자 다른 기사 보기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