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서상 '출판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의 '사업자'로만 인식할 것이다. 이 '사업'이라는 말은 돈을 벌기 위해 뭔가를 경영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단순한 인식 안에는 창의적인 사업활동을 높게 평가하는데 인색한 심리가 담겨 있다. 최초로 책을 만들어 내는 사업자와 중간에서 판매 차익을 가져가는 사람과 별 차이를 못 느끼는 것 같다. 물론 어느 한쪽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창의적인 발상을 실현시키는 생산자의 역할을 인정해 줄 때 뛰어난 기획자가 나타날 수 있다.
델피르는 그런 의미에서 뛰어난 사업가이자 창의적인 기획자이다. '델피르와 친구들'이라는 전시를 취재하면서 이런 기획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베르 델피르는 60여 년 이상의 기간을 사진을 대중에게 적절히 알려온 사람이다. 사진잡지와 영화, 전시 등을 통해서 사진이라는 장르를 중요한 예술 분야로 인식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꼭 사진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헬무트 뉴튼 같은 사진작가들을 수없이 발굴하고 키워낸 기획자이자 그들의 친구다. 사진이라는 장르를 예술로 키워낸 사람 중에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사실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는 지금만큼 예술로서의 위상이 있지는 않았다. 그림이 하던 기록과 재현이라는 기능을 이어받은 정도였다. 기록과 재현은 원래 그림의 중요한 의무였다. 요즘 행사장에 가면 취재진 뿐만 아니라 주최하는 쪽에서도 열심히 사진을 기록한다. 또 예전에 초상화를 그리던 것이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사진은 그림보다 쉽게 기록할 수 있는 특성 때문에 금방 기록하는 그림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예술로서의 가치는 별개의 문제였다. 사진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주관과 철학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찰나의 순간이 우연이고 행운이라고만 평가해서는 예술이 될 수 없다. 감탄을 자아내는 사진은 사진작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진을 소개하는 과정에 비로소 기획자의 창의성이 드러난다. 잡지 등의 책 안에서 부속품으로만 취급하는 사진은 말 그대로 글을 돋보이게 하는 사진일 뿐이다. 사진만으로 보여주는 감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출판 기획자인 델피르는 사진잡지를 이슈화 시킬 줄 알았다. 지금이야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도 많고 사진의 위상도 높아졌기 때문에 사진 전문잡지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았지만 60년 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전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사진으로 가득찬 잡지를 돈을 지불하고 사고 싶게끔 만들어야 했다.
델피르가 기획한 사진책 중에서 포토포슈(Photo poche)는 사진만으로 구성되었다. 사진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책의 크기를 주머니에 들어갈 만큼 작게 만드는 새로운 모험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진집이 되었다. 시집처럼 꺼내서 감상하기 쉬운 형태를 기획해 준 셈이다. 포토포슈라는 말 차체가 '주머니 속의 사진'이란 뜻이다. 어떻게 기존의 틀을 깨고 사진을 새로운 충격으로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기획한 결과일 것이다.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좋은 음식은 돋보이게 만드는 그릇에 담아야 감동이 배가 된다.
ⓒSebastio Salgado, Rwandan refugees. United Republic of Tanzania, 1994.
사진 한 장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사진 한 장으로 삶과 철학과 고뇌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사진작품이라는 '알맹이'가 그런 감동을 지니고 있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의미가 퇴색하기 마련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도 상영관을 잘 잡고 홍보를 잘 해야 흥행하듯이 철학이 담긴 사진도 대중과 쉽게 소통해야 한다. 기획이란 이 소통의 문제다. 델피르는 이런 '이미지 전달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을 것이다. 이미지라는 알맹이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작품이 되기도 하고 쉽게 잊혀지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알맹이와 포장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사람들은 포장을 한 단계 낮게 평가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예술의 경우 종종 포장이 전부가 될 때도 있다. 작가가 재능이 있어도 포장할 수 없다면 대중이 알 수 없고, 결국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안타까운 경우도 보게 된다. 전시나 책이라는 결과물이 작가의 이름을 달고 나가지만 그 이름 뒤에 숨어 있는 기획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영상기자로서의 역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한 명의 기자로 보도 되지만, 그 리포트를 제작하기 위해, 어떤 영상을 시청자에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하는 영상기자가 '델피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뛰어난 영상취재기자라면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단계에서 보도하고자 하는 방향에 맞게 그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영상을 구상하게 된다. 알맹이와 포장으로 나누어 중요도를 따지는 사람에게는 영상취재가 비교적 작은 역할이라고 단정지을지 모르겠지만,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영상'의 비중을 보면 어떤 것이 알맹이인지 쉽게 말할 수 없다. 어떻게 보여 지느냐가 전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방송뉴스이기 때문이다.
델피르가 발굴하고 기획한 작가들의 작품이 모두 모여 있다시피 한 전시를 보면서 일종의 반성이 드는 것은 나 하나 뿐일까. 자신의 이름이 가장 앞에 놓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일 텐데, 그 이름을 알아주는 역할은 누가 하는지 정작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술 전시를 보면 큐레이터 보다는 작가에게 집중하게 마련이고 훌륭한 책을 보더라도 글을 쓴 작가의 이름만 기억한다. 스타 큐레이터나 스타 출판업자가 없는 것은 이런 정서가 한 몫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그 사람의 재능을 알아주는 사람에 의해 탄생한다. 영화에서 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이제 다른 분야에서도 기획하고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한국의 '델피르'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