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고(故) 박완서 씨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더 지났다. 월간 '현대문학' 3월호는 추모특집으로 큰딸 호원숙 씨를 비롯해 고인과 함께 했던 이들의 추모글을 실었다.
호원숙 씨는 '엄마의 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전하며,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 남긴 일기를 공개했다. "매사에 감사"라고 쓴 일기에는 마지막까지 일상의 소중함을 소중히 여겼던 박씨의 마음과 다시 글을 쓰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병원 가는 날, 퇴원 후 바깥나들이라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는데 잘 다녀왔다. 원숙 원순이 같이 가서 혈액검사 X레이 사진 등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하고 나는 자신이 좀 생겼다. 집에 와서도 많이 앉아 있었다. 일기도 메모 수준이지만 쓰기로 했다. 워밍업이다.//살아나서 고맙다. 그동안 병고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지만 죽었으면 못 볼 좋은 일은 얼마나 많았나. 매사에 감사. 점심은 생선초밥으로 혼자 맛있게."
호씨는 어머니가 딸들에게도 맨발을 보여주지 않고 항상 양말에 긴 치마나 바지를 입었던 완벽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날 발목을 다쳐 병원을 찾았고, 그제야 호씨는 어머니 다리의 태생적인 붉은 반점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호씨는 "나는 그 순간 엄마가 진정으로 고맙고 무조건 잘해 드리고 싶어졌다"며 "부끄러울 것도 창피해할 것도 없는 엄마의 붉은 점을 보면 그래도 마음이 저려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크로아티아 여행 중 어머니의 담낭암 판정 사실을 들었고, 귀국하자마자 수술을 앞둔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박씨는 "암 걸린 게 무슨 죄냐?"며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엄마가 작가이기 이전에 온전히 우리 엄마이기만 하였듯이 병상에서 드디어 엄마는 우리 차지가 되었다"며 "부운 발을 씻어드리고 피가 돌도록 문질러 드렸던 그 시간은 엄마에 대한 경배의 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이해인 수녀는 '많은 추억은 많이 울게하네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고인과 따뜻한 정을 나눴던 나날을 회상하며 "문학은 삶에 대한 감사함이라고 일러주신 선생님, 꿈에서라도 다시 뵙고 싶은 그리운 선생님,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고별식에 참석하고 하관예절까지 다 지켜보고 왔는데도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것이 실감 나질 않네요"라며 "추억이 많은 그만큼 눈물도 그치지가 않습니다"라고 썼다.
소설가 구효서 씨는 "움츠린 어깨 아래로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소곳 웃는 분이 박완서 선생님"이라며 "왜 저토록 움츠리실까. 추워서, 라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은 계절과 상관없이 추위를 타신 것"이라고 전쟁의 상처로 한평생 겨울을 살아야 했던 선생을 추모했다.
그는 "선생의 겨울은 가족의 겨울이며 민족의 겨울이며 우리 모두의 겨울은 아닐지"라며 선생님은 마침내 그 추운 겨울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 추운 겨울에 떠나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 특집에는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의 조사와 구본창, 김채원, 김화영, 윤석남, 이시형, 이인호, 이혜경, 전경자, 정양모, 최불암, 최재봉 씨의 추모글, 고인의 자전소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와 문학평론가 박혜경 씨의 작품론 등이 실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