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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미호 선장이 전한 피랍 124일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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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AK소총 난사하며 순식간에 금미호 제압

협상 돌파구 없자 살해 위협 고조

다른 선박 납치 위한 해적질에 동원되기도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 4개월여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의 선장 김대근(54) 씨는 피랍 당시 해적들이 AK소총을 난사하며 순식간에 배에 올라 도주할 겨를이 없었다고 밝혔다.

김 선장은 10일 오후(현지시간) 금미호 선상에서 연합뉴스와의 위성전화 통화를 통해 피랍부터 석방 순간까지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김 선장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2010년 10월 9일 케냐 라무지역에서 18km 떨어진 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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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장과 김용현 기관사 등 한국 선원 2명, 그리고 중국인 2명과 케냐인 39명 등 모두 43명의 선원을 태운 금미호(241t)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통발을 이용해 게 잡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해적 본거지인 소말리아 연안으로부터는 400km 떨어진 곳이었고 케냐 군함도 순시하는 해역이라 안전하다고 여기던 곳이었다.

바로 그때 멀리서 시속 40노트 가량의 빠른 속도로 금미호를 향해 질주하는 소형 보트 한 척이 선원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해적의 보트라는 사실을 직감한 김 선장은 어구를 걷고 서둘러 배를 돌릴 것을 선원들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불과 5분 만에 금미호가 있는 곳에 도착한 해적들은 AK소총을 난사하며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조타실 유리창이 박살나고 유리 파편이 바닥에 쏟아져 맨발로 조업하던 선원들의 발에서 피가 흘렀지만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선원들은 순식간에 해적들에 의해 제압됐다.

악몽과도 같은 피랍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0여 명의 해적들은 곧바로 선원들의 옷, 양말, 신발 등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화장실의 휴지까지 빼앗아 배 안에 남은 물건은 아무 것도 없게 됐다. 런닝셔츠와 팬티 1장만이 선원들에게 남겨진 전부였다.

해적들은 자신들의 예상과 달리 금미호가 석방금을 지불하기 어려을 정도로 영세한 업체에 속한 어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포악해졌다.

툭하면 총을 겨누며 죽이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기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하기도 일쑤였다.

실탄이 장전된 총기여서 오발사고가 발생할 경우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선원들은 항상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평소 당뇨 증세가 있던 김 선장은 출항 때 준비했던 두 달치 약이 모두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고 김 기관사 또한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해적들은 또 다른 해적질에 금미호를 동원하기도 했다.

해적들이 보유한 소형 보트로는 먼바다까지 나가 해적질을 하기에 적합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적들은 금미호에 보트 2척을 싣고 나가 해적질을 일삼았고 실제로 LPG 운반선 한 척과 유조선 한 척을 추가로 납치하기도 했다.

금미호 선원들은 본인들도 해적에 잡혀 지옥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터라 다른 무고한 선박들을 납치하는데 동원되는 걸 극도로 꺼려했지만 살해 위협을 가하는 해적 앞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선원들의 고통이 하루하루 더해지는 동안 석방 협상에 참여했던 케냐 몸바사 선박대리점 대표 김종규(58) 씨는 백방으로 석방금을 마련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해적들이 최종적으로 60만달러를 요구함에 따라 김씨는 배의 어획물을 담보로 삼고 케냐 지인들에게 25만달러를 확보하기로 하고 정부에 30만달러 가량은 담보대출을 주선해달라고 지원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와중에 삼호주얼리호는 지난달 21일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구출됐지만 금미호는 석방 가능성이 점점 더 불투명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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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장은 선박대리점과 해적 간 석방협상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회사가 몇 년 전에 부도가 났기 때문에 나를 죽여도 돈이 나올 곳이 없다"며 또다시 해적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지옥 같은 나날이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반복됐지만 결국 희망은 찾아왔다.

해적들이 돌연 지난 9일 금미호를 풀어주고 자신들의 보트를 타고 떠난 것이다.

같은 아프리카인이자 이슬람 신자인 케냐인들이 대거 포함된 선원들을 더 붙잡고 있어봐야 석방금을 받을 수 있는 보장도 없는데다 선원들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는 점을 감안할 때 금미호를 볼모로 한 몸값 협상이 더 이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선원들은 해적에게 풀려난 순간 기쁨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124일간의 피랍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금미호는 10일 새벽 인도양 공해상에서 유럽연합 함대 소속 군함을 만나 유류와 의약품, 부식 등을 공급받았다.

하루라도 빨리 본거지인 케냐 몸바사항에 들어가 제대로 식사도 하고 쉬고, 건강을 돌봐야 할 선원들은 무엇 보다 가족들을 빨리 보고 싶은 상황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손 보지 못해 배가 선원들만큼 초췌해지고 항해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금미호는 군함 호위를 받아가며 항해, 납치된 지 4개월여, 석방된 지 닷새 만인 14일께 몸바사에 귀항할 예정이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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