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서울시 가공식품안전팀과 함께 초콜릿 단속을 나갔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든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불량 초콜릿'을 파는 업체가 주요 단속 대상. 몰카가 동원되고, 각 언론사마다 취재할 위치를 정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초콜릿을 파는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단속 시작!
단속반원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초콜릿들을 매와 같은 눈으로 살피기 시작합니다. 그러기를 10분. 유통기한은 제대로 적혀있나, 수입원은 분명히 표시됐나, 유해 성분이 들어있지는 않나 이리저리 뒤적이던 단속원의 손에 정체불명의 초콜릿이 걸렸습니다.
불안한 눈으로 단속 모습을 지켜보던 상인의 입에서 볼 멘 소리가 나옵니다.
"소분업 허가증 받고 소분한 초콜릿이에요. 소분한 것까지 유통기한과 원산지를 적어야 하는 걸 모르고..."
그러니까 상인의 말인 즉슨, 큰 유통업체에서 초콜릿을 대량으로 구입한 뒤 안에 든 초콜릿을 조금씩 나눠팔기를 했다는 겁니다. 작은 덩어리들로 나누는 것을 소분이라고 하는데 소분도 허가증이 필요합니다. 이 업체는 허가증을 받았으니까 나눠서 팔았고, 원래 덩어리가 유통기한과 원산지가 분명한 '無하자' 제품이니 안에 내용물에는 안 붙여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는 겁니다.
단속반도 내용물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몰라서 그랬으니 조금 너그럽게 봐주면 참 좋겠지만, 법이란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죠. 결국 확인서를 쓰고 행정처분을 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단속 과정을 지켜보며 서 있던 제 눈에 이상한 광경이 목격됐습니다. 초콜릿 단속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지면서 바로 옆 가게부터 시작해 먼 가게까지 모두 다 문을 닫기 시작한 겁니다.
단속반원들이 일일이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피곤해지고, 거기다 더 귀찮은 언론사들까지 대거 왔으니 문을 닫을 법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이곳저곳에서 상인들의 한마디가 터져나옵니다.
"요즘 경기 어떤지 몰라서 그래?"
"여기 한 번 둘러봐봐, 손님이 누가 있어. 다 상가 상인들이지. 누가 있냐고!"
그래서 둘러봤습니다. 정말 사려는 사람들은 눈에 잘 안 보이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커피마시고 이야기를 하는 상인들뿐입니다. 다시 또 칼같이 뾰족한 불만의 소리들이 귀에 와서 콕 하고 박힙니다.
"큰 죄를 지었어? 기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인간미가 없어? 먹고 살려고 바둥대는건 안 보여?"
"무조건 찍어다가 '더러운 초콜릿'이라고 방송 한 번 하면 다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사실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악의적으로 유통기한을 변조하거나 위생상태가 엉망인 초콜릿을 파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커다란 방송 카메라 대여섯 대를 들이대며 단속하는 모습을 촬영한다는게 '영 민망스러운 일이 아니구나' 하며 미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읍내에서 식당을 하던 시절, 군청에서 위생점검 나오면 닦은 데 또 닦고 치운 데 또 치워 놓고도 마치 죄인처럼 서계시던 부모님 생각도 났습니다. 간단한 점검도 그렇게 상인들에겐 불안한데, 평소엔 보기도 힘든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10여 명의 기자들이 들이닥쳤으니 오죽 싫었을까요.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취재를 하고 나왔습니다. 상인들말처럼 '인간미 없는 기자'가 된 거겠죠. 씁쓸했습니다.
떫은 감 먹은 표정으로 오후 단속을 또 따라나섰습니다. 오전처럼 상인들의 원망스런 눈빛이 쏟아지면 어떻게 견디나 고민하다보니 기분이 영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간 곳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한 건도 단속이 되질 않습니다. 아주 작은 초콜릿까지도 원산지와 유통기한이 깨알같이 붙어있습니다. 취재진들도 이런 곳이 있나 하면서 연방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 단속반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을 합니다.
"이 시장은 2년 전에 호되게 단속됐어요. 당시도 언론사와 함께 나왔는데 상태가 너무 엉망이어서 크게 보도된 이후로 자정노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정말 잘 돼 있네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직업이 또 너무 악역만은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이 살짝 들긴 했습니다만 취재하고 온 지 하루가 지난 오늘도 '기자들은 인간미가 없어'하는 소리가 귀에서 맴돕니다.
많은 경우 기자들은 참 인간미가 없게 비칠 때가 많습니다. 가족이 죽어 심장이 타들어가고 애가 끓는 사람 심정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지금 심경'을 묻고, 전후사정 따져보면 대역죄인도 아닌데 아주 나쁜 사람인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훨씬 어른인데도 바락바락 대들거나 악을 쓰는 일도 종종 일어나죠.
인간미도 살리면서 사회적 공익을 실현하는, 그러니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좋은 방법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적극 반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