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앞으로 정례적으로 기자회견을 갖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버냉키 의장은 3일 내셔널프레스클럽 주최의 오찬 기자간담회에 참석, 앞으로 통화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회의가 끝난 후 1주일 정도 지나 기자회견을 갖는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방안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찬간담회에 버냉키 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즉석 답변한 것도 매우 드문 사례이지만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겠다는 것은 보수적인 연준의 성격에 비춰 볼 때 상당한 파격이다.
전세계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중앙은행장의 말 한마디에 채권값이 급등하거나 곤두박질치고 주가와 환율 등 여타 지표들도 덩달아 춤을 추기도 한다.
이 때문에 연준 의장은 평소 극도로 말을 아끼고 언론과의 직접 접촉을 가급적이면 피하려 한다. 시장의 흐름을 한쪽 방향으로 몰고 갈 위험성을 우려한 탓이다.
버냉키의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이 재임 중 의회 청문회에서 한 의원으로부터 "이제 당신의 생각을 좀 알 것 같다"는 말을 듣자 곧바로 "그렇다면, 내 말의 본뜻이 잘못 전달된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린스펀의 이런 화법은 `건설적 모호성'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그린스펀의 화법은 시장의 쏠림을 막는 동시에 시장으로 하여금 그의 말에 더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이런 그린스펀도 1987년 NBC방송과 인터뷰를 가진 후 미국의 주가가 사상 최대의 폭락세를 기록하면서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
이후 연준 의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22년이 지나서였다.
버냉키 의장은 2009년 3월 CBS의 시사프로그램인 `60분'과 직접 인터뷰에 응했다. 물론 이 방송이 나간 후에도 뉴욕증시는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런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버냉키가 기자회견 정례화를 검토하겠다고 한데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다.
정치권은 금융위기 수습과정에서 연준이 무제한의 발권력을 동원해 대형 금융회사들을 구제, 모럴해저드를 조장했다고 비판했으며, 최근에는 연준의 양적완화 조치에 대해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혹독한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을 통해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감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투명성 제고를 표방하며 연준의 독립성에 제약을 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버냉키 의장이 정례 기자회견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정치권의 이러한 예봉을 피하기 위한 대응으로 여겨진다.
물론 버냉키도 기자회견이 갖는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 "즉석에서 답변하는 것이 시장에 불필요한 불안을 야기하고 발언의 진의가 왜곡되면서 금융시장을 불필요하게 출렁이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연준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는지 시장참가자들과 일반 국민에게 좀 더 투명하게 알리는 것이 불확실성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했다.
전세계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버냉키 의장이 `기자회견의 정례화'를 검토 중이라고 한 이상 미 중앙은행의 신뢰를 생각할 때 이를 없었던 일로 덮고 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준의 정례 기자회견이 어떤 형식으로 언제부터 시작될 것인지에 관한 발표만 남은 것으로 여겨진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