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나 미대의 입학시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철저히 응시생과 차단됩니다. 제출한 미술 작품에는 응시생의 이름을 가리고, 응시생의 연주를 들을 때에는 가운데 가림막을 세워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사제 관계를 비롯한 개인적인 인연이 심사 결과에 반영되는 것을 철저히 막기 위해서입니다.
하물며 사건 관계자들의 생사여탈이 결정되다시피 하는 수사에 있어서는 더더욱 공정성, 객관성이 지켜져야 합니다. 법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이런 원칙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사건 당사자들의 명망이나 사회적 지위, 계급, 빈부 등을 모두 떠나 법에 따라서만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건 당사자들이 어떤 변호사를 동원했는지는 더더욱이나 고려의 대상에서 배제돼야할 사항일 것입니다. 수사를 함에 있어 그 변호사가 검사 출신인지, 판사 출신인지, 또는 고위직을 거친 유명 전직인지, 요새 잘나가는 인사인지 등을 신경 쓰고 눈치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그런데 SBS 뉴스가 보도했듯이 검찰은 수사 상황을 정리해 보고하는 내부문건에 어느 변호사가 개입하고 있는지를 포스트잇에 써서 강조하듯 붙여놨습니다. 심지어 해당 변호사의 명함을 편철해서 함께 첨부하는 것은 물론 해당 변호사 요망사항이라며 항목을 정리해 무엇을 요구하는지 친절하게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오른 변호사는 꼭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뉴스에 관심 있는 분들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 검사 출신 변호사였습니다. 한분은 아직도 신문 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검사장급 대검 간부 출신 변호사이고 또 다른 한분은 대형 수사마다 참여했던 에이스 검사로 대검 주요 간부를 지냈으며 지금도 한 방송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이른바 '거물'입니다. 현역 검사치고 이들의 이름 앞에 얼마간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건 수사에 있어 이런 사람들의 이름과 요구사항을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내부 문건에 공공연하게 표시하는 것은 '검찰은 전관예우를 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간부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수사 내용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단계에서 전화 한 통화로 사건 처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법조계의 소문이 낭설이 아닌 사실임을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SBS의 이번 보도에 대한 검찰의 해명은 어이없음의 극치였습니다. 원문 그대로 옮겨보면 "변호사들의 메모와 명함은 원래 다 그렇게 처리한다. 고검에 올라오는 사건은 다 (변호사가) 쟁쟁하다"라고 밝혔습니다. 수임 변호사의 명성으로부터 최대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기는커녕 대부분의 경우 문건에까지 표시를 하고 이를 주고받으며 신경을 쓴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거물 변호사는 일부러 검사가 포스트잇에 이름을 적어서 붙여놓고 받은 명함을 문건에 스테이플러로 편철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최근 감사원장 후보로 나섰던 전직 검찰 간부와 헌법재판관 후보에 내정된 또 다른 고위 검사 출신 변호사의 어마어마한 임금 수준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들은 잠시 몸담았던 법무법인에서 한 달에 1억 원 가까운 급여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검찰의 고위 간부에 오를 만큼 실력파 변호사라 하더라도 한 달에 1억 원 받을 만한 능력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입수한 문건을 보면서 '아, 그럴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건을 맡기만 하면 검찰이 '이름을 특별히 표시'하면서 신경을 써주고 변호사의 요구사항을 상부에 보고까지 하면서 고려를 해준다면 그렇게 막대한 돈을 받을 만하지 않습니까?
부디 검찰은 드라마 '대물'에서 하도야 검사가 '법의 여신' 디케 앞에서 외치던 '검사윤리강령'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봐 주시기 바랍니다. 변호사의 메모와 명함을 당연하듯 표시하고 신경 쓰는 것이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행위인지 따져봐 달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