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한 서울서부지검 봉욱 차장검사는 30일 "이번 수사는 차명소유회사(위장계열사)와 차명계좌 등 '차명 비리'와의 싸움이었다"고 평가했다.
봉 차장검사는 이날 서부지검 대회의실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수의 위장계열사를 통한 조직적 비리를 밝혀낸 것은 처음"이라며 "유상증자와 다단계 기업 세탁 등 수법이 더 지능화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승연 회장과 홍동옥 전 그룹 재무총책임자(CFO) 등 관련자 11명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ㆍ배임)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다음은 봉 차장검사와의 일문일답
--이번 수사의 핵심은 뭔가
▲차명비리와의 싸움이었다. 382개 차명계좌와 13개 차명소유회사를 둘러싼 비리가 가장 컸다. 차명회사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기소한 건 처음이다. 이번 수사를 통해 차명소유회사처럼 투명 경영을 막는 근원적 문제점에 대해 사회가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차명회사 거래에서 95억원 등 거액이 장교동팀(회장 직속의 비밀 재무팀) 소유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돈의 용처는
▲장교동팀으로 들어간 돈과 차명 부동산을 팔아서 생긴 돈 등을 합쳐 '묻지마' 채권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가의 미술품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채권은 증여세를 내지 않고 김 회장의 아들들에게 넘어갔고 일부 채권 상환자금은 한화 주식을 취득할 때 쓰였다.
--부평판지와 한유통, 웰롭 등 3개사가 핵심 관련 업체다. 김 회장은 이 회사들이 자신 소유의 위장계열사라는 점을 인정했나.
▲부평판지는 김 회장 어머니의 회사인데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한유통과 웰롭은 동생(김호연)이 설립한 회사인데 김 회장이 나중에 인수해서 자기 것이라고 했다.
한화 경영진의 입장은 다르다. (어디서 엇갈리나) 구체적으로 말 못해도 김 회장이 일부 인정한 책임을 부인했다.
--한화 수사는 이제 마무리 단계인가
▲기소된 부분까지는 끝났다. 사법방해 행위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추가 기소가 이뤄질 것이다.
--한화는 묻지마 채권을 언제 샀나
▲주로 2004년 이후 채권을 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회생을 위해 자금 추적과 증여세 등을 면해주는 조건으로 정부 당국이 묻지마 채권을 권장한 적이 있지만 2004년이라면 경제회복이 된 이후라 시기가 맞지 않는다. 채권 상환기간을 다 넘긴 다음에 산 점도 석연찮다.
--오랜 기간 수사했는데 아쉬운 점은
▲한화 측이 수사방해 행위를 많이 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법방해 행위가 이렇게 많았다는 것은 처음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법방해를 방지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구속이 아닌 불구속 기소로 한 이유는
▲해당 혐의들은 징역 12년8월∼20년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수사팀에서는 많은 검토가 있었는데, 법원의 영장 판단과 수사를 가능하면 신속하게 종결해야 하겠다는 점 등을 토대로 결정을 내렸다.
--한화는 3천500억원 부당지원과 관련해 계열사와 그룹, 해당 협력사 모두 손해가 없어 배임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는데
▲2005년 (한화그룹의) 제일특산 사건에서도 한화 측은 '성공한 구조조정이다' '아무도 손해를 입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핵심 피의자인 김연배 부회장은 실형이 확정됐다.
쉽게 얘기해 차명소유회사가 3천500여억원을 갚아야 하는데 아무런 의무가 없는 계열사에 돈을 내라고 한 것이다. 손해가 없었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정관계 로비 의혹은 밝혀진 것이 없는데
▲비자금 수사라면 다들 정관계 로비 의혹을 생각한다. 그러나 정관계 로비 의혹 규명의 기본 단계는 비자금이 어떻게 조성이 됐는가에 대한 조사다.
자금의 출처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정관계 로비를 위해 쓰였는지 수사가 이뤄진다.
정관계 로비 의혹에 관해서는 수사팀이 포착한 단서나 내부 고발 내용 등이 없었다.
--기업 범죄에 있어 태광과 한화 그룹은 차이가 있었다던데
▲범죄를 놓고 보면 태광은 기존 방식으로 횡령했다. 무자료 거래, 피복비 착복 등이 그 예다.
한화는 범죄 수법이 고도화ㆍ지능화됐다. 차명소유를 통한 불법행위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볼 수 있는 사례다.
2005년 기소된 제일특산 사건은 1999년 일어난 범행이다. 합병해 채무를 아예 덮어버렸다. 수법이 단순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주식 인수와 유상증자, 다단계 기업세탁 등이 동원됐다.계열사가 빚을 함부로 갚아주면 횡령ㆍ배임이 된다는 것을 한화 측이 학습한 것이다.
홍동옥 씨는 특히 과거 제일특산 사건에서 검찰 수사 대응팀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분식회계과 기업 명칭 바꾸기 등 복잡한 방식으로 범행을 숨겨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 구속수사를 추진했는데 그 이유는
▲재판에 피의자들이 넘겨지면 진술내용이 담긴 조서가 복사돼 회사 측에 전달된다. 이렇게 되면 용기 있게 진술한 중간급 직원들이 겪게 될 고초가 클 수밖에 없다. 구속 수사ㆍ재판이 되면 용기있는 진술이 왜곡ㆍ회유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