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는 위험하다."
사회부 초년병때 꽤나 친숙했던 취재장비가 바로 '몰래카메라'입니다.
그런데, 기자들에게 '몰카'하면 장비로서의 몰래카메라뿐 아니라 당사자 몰래 촬영하는 광범위한(?) 취재기법을 뜻하죠.
제가 SBS 사회부에 처음 입사했던 지난 2004년 겨울, 청량리에서 '몰카' 때문에 죽을뻔 한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성매매 특별법 그후 6개월'이라는 기사의 취재를 맡았는데, 당시 '수습'이어서 회사에 한 대밖에 비치돼 있지 않은 '몰카'는 주어지지 않았고, 6mm 카메라를 공책에 둘둘 말고 이른바 '청량리 588'을 누볐습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위험천만한 취재였는데, 1시간 만에 속칭 '이모'라는 사람에게 발각됐죠.
"삼촌, 이놈 잡아!"
험악한 '삼촌'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골목으로 끌려가면서, 그야말로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먼저 현장에서 달아난 VJ 오세관씨가 슬기롭게 가까운 지구대로 달려가 경찰을 불러와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588의 '보스'인 자율정화위원회 위원장 할아버지는 청량리 지구대장 앞에서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네 이름 기억하고 있다. 우리 막내 어차피 학교(교도소) 보내야 하니, 네 얼굴에 칼집 만들어줄거야."
그후…사회부에서 마지막으로 취재했던 '몰카'는 2009년 1월 용산 철거민 참사현장이었습니다.
당시 경쟁 M사에서 먼저 단독기사 하나를 치고 나가자, 현장 취재 반장이었던 저는 사회부 팀장이었던 '캡'에게 혹독한(지금 생각하면 애정어린^^) 꾸지람을 들어야 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아침, 당시는 무소속이었던 이윤석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의원은 당시 행안위 소속이었는데, 다른 사건과 관련한 취재에서 만난 적이 있었죠. 이 의원은 민주당에 입당한 뒤에도 지역구인 신안 지역 도서민을 위해, 산낙지를 들고 서울시청에 쳐들어간 적도 있는 인물입니다. 보기 드문 열혈 정치인이죠.
"의원님, 제발 도와주십쇼."
그때 제가 세운 작전은 외모가 지적인 한 영상기자에게 '몰래카메라'를 맡긴 뒤, 현장 시찰 나온 이 의원 일행 속에 보좌관으로 꾸며 잠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안이 워낙 중대하다보니, 경찰은 언론의 현장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었습니다.
이 의원 일행이 현장에 들어간 뒤 30분 동안, 저는 철거건물 옆 허름한 상가 화장실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발 들키지 말고 취재가 성공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들키지 않고 취재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영상기자가 들고 간 몰래카메라 렌즈 앞을 뜻하지 않게 이물질이 가리는 바람에, 결과물은 앞이 절반만 보이는 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이었습니다.
녹화한 영상은 당시 8뉴스 톱 뉴스로 나갔지만, "화면이 별로 충격적이지 않다", "시시하다" 등의 야유도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캡과 사회부장께서는 첫째, 타사에게 한방 얻어 맞고 바로 다음날 반격을 해낸 점, 둘째, 국회의원에게 몰래카메라를 맡길 생각을 한 용기 등을 이유로 상당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후 경제부 2년 동안에도 몇 건의 '몰카' 취재를 하긴 했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가 지난주 월요일, 새로 발령이 난 부서에서 2년만의 '몰카' 취재를 나서게 됐습니다.
취재 목표는 서울시가 공급하는 장기전세주택, 시프트의 편법 입주권을 암암리에 거래하는 '떳다방'.
진주 지국장(?) 시절 호흡을 같이 했던 강동철 영상 기자와 서울 강남 삼성동의 한 대형 부동산 컨설팅 업체에 잠입했습니다.
부동산에 들어서기 직전, 혹시 몰라 카메라 건전지 레벨을 확인해보니 사전 충전이 부족해 32분의 가동시간이 찍혀있었습니다.
손님으로 가장하고 사전에 업체와 시간약속을 잡았기 때문에, 재충전하러 발을 돌릴 수도 없는 상황. 대충 업체 앞 화장실에서 몰카를 세팅하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시간 30분, 빨리 한 번 해보자고."
[기자 : 시프트 입주권을 좀 구하고 싶은데요.]
[기획부동산 업자 : 이리 앉으세요. 25평형은 6천원, 33평형은 8천원 주시면 100% 시프트 입주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게도 취재 대상은 말이 상당히 빠른 편이었고, 핵심부터 말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기획부동산 업자 : 서민들만 시프트에 들어간다고요? 그건 다 서울시에서 그냥 하는 말이고, 고객님 소득이 1억원이든, 2억원이든 관계없습니다. 세곡 아직 열려있고요, 우면도 들어가실 수 있고요.]
시프트를 공급, 관리하는 서울시와 SH공사측은 법적으로 서민들에게만 입주권을 주기 때문에, 고소득자 같은 무자격자들의 입주가 불가능하다고 밝혀왔는데요, 실제로는 구멍이 뻥 뚫린 상황이었습니다.(시프트: 주변 전세가의 80% 수준에, 최장 20년을 세들어 살 수 있는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 최근 전세난으로 인기가 높음)
기획부동산 업자의 설명에 따르면, 철거 예정 가옥을 주민공람 공고가 뜨기 전에 사들여 명의를 이전하면 철거 대가로 철거민 특별입주권이 나오는데, 이 입주권이 자동으로 획득되기 때문에 자격기준이 안 되는 고소득자들까지 시프트에 입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어쨌든, 업자와 30분가량의 대화를 끝내고 다시 화장실로 직행, 몰래카메라에 녹화된 내용을 확인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게 대화가 녹화됐고, 녹화 확인이 끝날 무렵, 카메라 전원이 꺼지더군요.
이렇게 해서 2년만의 '몰카' 취재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지난 금요일 8시 뉴스에도 잘 편집돼 방송될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그야말로 소비자 입장에서 뉴스를 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사가 어떤 내용을 실었고, 그에 대한 느낌은 이렇다' 정도가 뉴스에 대한 공통된 반응이죠.
하지만 생산자인 기자 입장에서 접근하다 보면, 뉴스는 땀과 열정이 복합적으로 얽힌 일종의 '행위 예술'(?) 또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취재 과정을 돌이켜 생각하다보니 객관적인 팩트에 감상이 더해진 결과죠.
그리고 '몰카'도 바로 이런 작품을 만드는데 빠질 수 없는 기법이라는 걸 일선 취재기자로서 부정하기 힘듭니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어 과용되면 안 된다는 점은 맞지만, 이 '몰카'가 없이는 제대로 된 고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도 '몰카'는 위험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 취재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지만 들키면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또 취재가 성공해 방송이 나가더라도 모자이크, 음성변조 한 번 실수하면 몇달 동안 법정에 끌려다니며 속앓이 할 수도 있고, 또 기껏 세운 회심의 작전이 수포로 돌아가는 아픔도 겪을 수 있습니다.
어차피 월급받고 하는 일이니까 감수해야 하겠지만, 다만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몰카' 뉴스가 화면에 나올 때, "쯧쯧...저 기자 고생했네" 하시는 시청자들이 한 두 분씩이라도 생겼으면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