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일요일이였던 지난 2일 경북 구미시의 한 모텔에서 40대 남자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름은 김모 씨, 47살. 이 남자의 발목에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고 편지지 2장 분량의 유서가 나왔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였지만 내용의 상당 부분은 전자발찌를 소급 착용하게 된 데 대한 부당함과 억울함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이 법을 다시 검토해달라는 호소까지 있었습니다.
김씨는 지난 1997년 살인죄를 저질러 15년 형을 선고 받고 13년 8개월만에 가석방된 범죄자였습니다. 내연녀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격분해 내연녀의 두 돌배기 딸을 수건으로 목졸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시신을 몰래 숨겼다고 합니다.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전과자죠.
김씨는 지난해 8월 가석방되면서 대신 전자발찌를 차게 됐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법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개정법이 마련된 2008년 이전의 악성 성범죄자는 물론 살인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소급 착용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었습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이 전자발찌와 관련해 고통스러운 처지를 호소했다고 합니다.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 대중목욕탕에도 갈 수 없다,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다,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반바지를 입기는 커녕 바짓단을 접어올릴 수 조차 없었겠죠. 한여름 공사장에서 일하느라 땀과 먼지를 뒤집어 써도 남들과 같이 샤워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 직장 구하기도 쉽지 않았겠다 생각됩니다.
김씨는 출소 두 달만인 지난해 10월에도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당시에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번에는 결국 세상을 버렸습니다. 전자발찌의 소급 적용이 부당하다는 외마디 외침만 남기고 말입니다.
처음 이런 취재 내용을 접하고 나서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이제 막 두 돌을 지난 간난아기를 목졸라 숨지게 하고 그 시신마저 감췄던 흉악범이 다시 사회로 나오는데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세상에 알릴 가치가 있는가.
그런저런 고민을 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아무리 흉악범이었다 하더라도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던져 부당하다 외쳤는데 아무도 모른 척, 들어주지 않는 것은 잔인한 일 아닌가. 그 사람이 목숨을 버려가며 말하고 싶은게 무엇이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전자발찌 도입 자체가 인권 시비를 내포한 문제였습니다. 죄값을 치르고 나온 사람에게 전자장치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어디에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전자발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한참 동안 도입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혜진·예슬이 피살 사건에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까지 이어지면서 성범죄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여론이 비등했고, 이후에는 2008년 전자발찌 도입에 이어 2010년 대상자 대폭 확대와 소급적용까지 감히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법원이 전자발찌의 소급적용에 대해 '일종의 보호처분으로 형벌 불소급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만큼 적법하다'는 판결까지 내놓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이중처벌이고 전과자의 사회적응을 가로막는 부당한 처분이라며 여전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일부 전자발찌 소급 착용 대상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재 헌법재판소의 심리를 받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도 아마 각자 생각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또 어제 자살 사건을 보도한 SBS 법조팀은 전자발찌 소급적용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집단적인 분노와 사고에 매몰돼 혹시 인간에 대한 중요한 가치를 너무 쉽게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보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비극적인 삶을 살고간 한 영혼을 위한 신원 아닐까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