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영화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즉 광수대가 자주 등장합니다. 얼마 전 흥행작이었던 "부당거래"는 광수대 강력반장이 주인공이었고, 최근 개봉작 <황해>에서 살인범 하정우를 쫒는 경찰도 광수대 형사들이었습니다.
확실히 광수대는 작가나 감독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조직입니다. 서울경찰청장의 별동대, 지역과 관할 구분 없이 사건만 쫒는 형사들, 날고 기는 서울 지역 형사들이 모두 선망하는 조직... 그야말로 대중이 좋아하는 '수사 전문가' 형사의 이미지를 묘사하기엔 광수대만큼 적합한 조직도 없겠죠.
저도 지난해 광수대를 출입한 경험이 있습니다. 사무실도 자주 드나들고 형사들과 개인적으로 밥도 먹고 술도 먹다 보니, 광수대란 조직이 조금은 눈에 들어오더군요. 마침 제가 출입하던 시기에 광수대를 소재로 한 영화도 잇따라 개봉해 더 흥미가 생겼습니다. 지켜보다 보니, 영화랑 현실이 비슷한 점도 꽤 많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1. 광수대 형사들은 돈을 밝힌다 - 그런 사람도 있다?
<부당 거래>는 뇌물과 스폰서에 관한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광수대 형사들은 크고 작은 부패에 쉽게 노출돼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돈 밝히는 형사들로 묘사되는 거죠.
경찰 수뇌부도 이런 묘사를 간단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당장 지금도 광수대 강력반장 한 명은 경쟁업체를 수사하는 대가로 외제 크라이슬러 자동차 등을 받은 혐의로 감찰을 받고 있으니까요. 아직 감찰 대상에 오르지 않은 부패까지 합쳐보면 수사권을 가진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광수대 형사들 일부도 부정한 청탁과 돈을 받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만나 본 많은 광수대 형사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점심에 나가사끼 짬뽕 한 그릇 먹고도 영수증을 꼭 끊고, 저녁 자리도 청국장이나 부대 찌게 이상은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었죠.(저는 기자라서 특별 대우를 받아, 이들과 가끔 삼겹살을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만...) 물론 제가 관찰한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고, 분명 조직을 욕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부당거래>에서 처럼 돈 밝히는 게 체질화된 조직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들이 '밝히는 건' 따로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2. 광수대 형사들, 승진에 목숨을 건다
승진, 승진, 승진. 광수대 형사들이 목숨을 거는 건 '실적'과 '승진'입니다. 경찰의 실적주의는 아주 계량적입니다. 특히 '성과주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현 조현오 경찰청장 부임 이후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죠. 지방청장 표창은 몇 점, 본청장 표창은 몇 점, 강도 검거는 몇 점, 살인 검거는 몇 점. 엄격한 채점표 때문에 승진을 목전에 둔 경찰관들은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광수대는 더 하죠. 광수대란 조직 자체가 서울 전역에서 승진을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광수대에 있으면 아무래도 점수가 많이 나오는 대형 사건을 담당하게 되니까요. 또, 아무리 처리해봤자 몇 점 안 나오는 일반 당직 사건(관할 지역에서 발생하는 절도나 폭력, 강력 사건) 부담에서도 해방되고요. 그만큼 광수대 내부의 승진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영화 <부당거래>에서 주인공 최철기 반장은 승진 하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죠?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면이 있지만, 승진을 향한 집념이란 점에서 이 부분은 현실과 상당히 닮았습니다.
승진 하기 위해선 일단 맡은 사건 잘 해결해야 합니다. 피의자 빨리 잡고, 혐의를 제대로 적용하는게 1순위죠. 그러나 승진에 필요한 점수를 따기 위해, 이들이 피의자 검거 못지 않게 신경쓰는 게 또 있습니다. 그건 말이죠..
3. 기자보다 기사 잘 쓰는 광수대 형사
언론 홍보에 광수대보다 더 탁월한 경찰 조직은 없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취재해본 조직 중에 광수대가 언론 홍보에 가장 뛰어난 것 같습니다. 왜 그러나고요? 언론 보도가 광수대 형사들이 그토록 바라는 '승진'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자랑하는 엄격한 '성과주의' 덕분에 지상파 방송사 메인뉴스 리포트 1개는 몇 점, 아침 뉴스는 몇 점, 조간 신문 종합면은 몇 점, 사회면은 몇 점. 다 세밀하게 규정돼 있거든요.
이 중에서 가장 배점이 높은 것은 영광스럽게도 지상파 방송사 저녁 메인뉴스에 보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수대 형사들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영상 취재'를 절대 잊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채증용'(증거를 채집하기 위한 것) 자료라고 둘러대지만, 순수하게 그런 의도라고 보기에는 너무 언론사의 입맛에 딱 맞는 영상 자료를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해 촬영한 뒤 언론에 제공하죠.
심지어 기자들 편집하기 편하라고 형사들이 기초적인 수준의 영상 편집 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뉴스에서 보는 광수대 사건들 가운데 현장의 생생한 그림은 거의 대부분 광수대 형사들이 구해온 CCTV거나, 형사들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광수대 형사들은 또 기사의 핵심 틀거리까지 잡아줍니다. 예전에 사채를 이용해 마트를 강탈해가는 상당히 복잡한 사기 행각을 광수대가 적발했습니다. 기사를 쓰기에 좀 복잡한 내용이었는데 광수대 형사들이 아예 제목을 뽑아서 보도자료를 작성했더군요. "마트 사냥꾼 일당 00명 검거". 기업체 홍보실에 퇴직한 광수대 형사들 채용을 적극 고려해 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4. 광수대의 빛과 어둠
광수대, 분명 능력있는 형사들이고 헌신적인 경찰들입니다. 관할 싸움 하다가는 100년 가도 해결 안 될 사건들, 광수대가 나서서 해결한 경우, 적지 않죠. 그러나 마냥 광수대를 아름답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우선 실적과 홍보에 너무 치우친 조직입니다. 저는 예전에 언론사의 피의자 인터뷰 관행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광수대 형사들은 너무 연출에 능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형사들이 너무 언론을 의식하게 되면서 수사 일정을 무리하게 조정하거나 피의자에게 인터뷰 등을 압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언론에 관심을 끌만한 사건만 맡는 경우입니다. 장기간 시간이 걸리고 집중적인 역량이 투입될 것 같은 사건은 기피하는 경향도 노골적으로 눈에 띕니다. 물론 이 모든 문제는 광수대 형사들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게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만든 수뇌부의 책임이 더 큽니다.
실적 욕심 때문에 불거지는 부작용은 또 있습니다. 큰 사건이 났을 때 일선 경찰서와 갈등을 빚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이죠. 영화 <추격자> 기억 나시죠? 이 영화의 소재는 '연쇄 살인범 유영철 사건'인데, 영화에서 범인 검거 공로를 놓고 서대문경찰서와 기수대(기동수사대: 광수대의 전신)가 다투는 장면 기억나실 것입니다.
영화의 다른 여러 장면들과는 달리, 불행히도 이 다툼은 실제로 벌어졌던 일입니다. 이 밖에도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에서 일선 경찰서와 광수대의 공적 다툼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관할 다툼은 어떤 거대 조직에서나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곁에서 지켜볼 때 광수대가 지나치게 행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듯 싶습니다.
어떤 조직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광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광수대의 많은 형님들을(일선 형사들을, 사회부 기자들은 보통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참 좋아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일방적인 부정적 묘사를 보며 형사들이 분노할 때, 저도 일정 부분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광수대는 분명 그림자가 있는 조직입니다. 고쳐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리얼하다"고 평가하거나, 많은 시민들이 경찰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광수대 '형님'들도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