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은 호두까기 인형의 계절이다. 매년 공연되는 작품이지만, 할 때마다 다시 보게 된다. 월간 '누리'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해 올린다.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이 매년 나란히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하지만, 이 글 초점은 국립발레단에 맞췄다.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에 따라 썼기 때문이다.
어느새 2010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12월은 '호두까기 인형'의 계절이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전세계에서 공연되는 발레 '호두까기 인형'. 나는 언제부터인가 '호두까기 인형'을 보는 걸 연말의 주요 행사로 여기게 됐다. 여러 버전과 단체의 '호두까기 인형'을 봤지만, 그 중에서도 국립발레단이 2000년부터 공연해온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빼놓을 수 없다.
국립발레단은 이미 오래 전인 1977년부터 '호두까기 인형'을 공연해 왔지만, 2000년의 '호두까기 인형'은 특별했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을 30여 년간 이끌었던 전설적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를 초청해 새로운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선보인 것이다.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에서 예술의전당으로 보금자리를 옮기고 법인으로 출범하면서 야심작으로 내놓은 공연이기도 했다.
'호두까기 인형'은 독일 작가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바탕으로 한 2막 발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은 소녀 클라라가 꿈속에서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과자 나라를 여행한다는 내용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클래식 발레의 위대한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와 그의 조수였던 레프 이바노프의 안무로, 1892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에서 초연됐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에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춤 없이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이 따로 자주 연주될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하다. 2막 눈송이 왈츠에 삽입된 합창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멜로디로 하늘에서 눈송이가 춤추듯 내려오는 정경을 펼쳐놓는다. 사탕요정의 춤에 사용된 '첼레스타'라는 악기의 영롱한 선율은 별사탕이 반짝거리는 듯한 느낌으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중국과 러시아 등 민속춤 음악에는 그 나라의 음악적 특징을 절묘하게 반영했다. 하지만 '호두까기 인형'의 첫 공연은 실패하고 말았다. 차이코프스키는 살아 생전에 자기 작품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죽은 비운의 작곡가였던 셈이다.
이후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프티파-이바노프의 원전을 기본으로 여러 개정판이 만들어졌는데, 국내에 알려진 것만 해도 10개 이상이다. 대개 줄거리나 구성은 비슷하지만, 1934년 바이노넨이 다시 안무한 '호두까기 인형'은 프티파-이바노프의 원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프티파-이바노프 판에 드러나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이 바이노넨 판에서는 많이 축소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시대적 배경과 관계가 있다. 프티파-이바노프가 활동하던 러시아 황실 시대에는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을 좋아했지만, 사회주의 국가가 된 뒤 활동했던 바이노넨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나 초월적 존재를 부인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프티파-이바노프 판에서는 과자나라에서 사탕요정이 등장해 어린 클라라가 이 사탕요정의 꿈을 감상하는데, 바이노넨 판에서는 클라라가 꿈 속에서 어른이 되어 직접 요정들의 춤을 춘다. 드로셀마이어라는 인물도, 프티파-이바노프 판에서는 마법사 같은 신기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바이노넨 판에서는 클라라의 대부로 바뀌었다. 프티파-이바노프 판은 꿈 속의 장면으로 끝나는 데 비해, 바이노넨 판은 꿈에서 깨어 현실로 되돌아오는 장면이 에필로그로 삽입돼 현실감을 높였다.
△ 발레 <호두까기 인형>. 사진제공 국립발레단
그런데 1966년 볼쇼이 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호두까기 인형'은 프티파-이바노프 판이나 바이노넨 판과는 또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그리가로비치는 여주인공의 이름 클라라를 마리로 바꾸고, 드로셀마이어는 법률가, 마리의 아버지는 의사, 이런 식으로 직업까지 세세하게 설정했다. 또 2막의 과자 나라는 크리스마스 랜드로 바꿨다. 2막은 크리스마스 랜드에서 왕자와 마리의 결혼식이 벌어지고, 각 나라 인형들이 축하의 춤을 추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인형들은 1막에서 벌어지는 왕자와 쥐들의 전투 장면에서부터 등장해 1막과 2막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쥐들이 나타나면 인형들이 벌벌 떨며 무서워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 안무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판에서는 마임으로 처리되는 부분까지 모두 춤 동작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춤의 양이 엄청나게 많고, 고난도 동작이 이어진다. 또 '호두까기 인형' 캐릭터를 목각인형으로 처리하지 않고, 몸집 작은 어린이 무용수에게 맡겨 직접 춤을 추게 했다. 깜찍하고 앙증맞은 호두까기 인형의 춤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이 버전의 매력 포인트로 자리잡았다.
2막에 나오는 각국 인형들의 춤은 다른 버전에 비해 민속성을 강조했고, 어려운 기교가 요구되는 동작이 많다. 어린이들이 동화적인 분위기에 반한다면, 어른들은 현란한 발레 테크닉에 취한다. 또 보통은 주역이 춤을 춤 때 군무는 움직이지 않고 주역의 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그치지만, 그리가로비치 버전에서는 군무 무용수들도 마치 움직이는 무대장치와 같이 끊임없이 대열을 변화시켜 시각적인 효과를 더한다.
나는 2000년 한국을 방문했던 그리가로비치를 처음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국립발레단의 발레가 볼쇼이발레단과 비교해 수준이 어떤가'라는 질문에, 정색을 하고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국립에는 국립의 발레가 있고, 볼쇼이에는 볼쇼이의 발레가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해, '순위 매기기'와는 무관한 예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연습기간 내내 한국 무용수들을 성심껏 지도하는 모습은 나이를 잊은 예술가의 열정을 실감하게 했다.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은 국립발레단이 국립극장 시절 공연했던 '호두까기 인형'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2000년 이전, 국내에서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명성은 국립 발레단보다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것이었다. 그러니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매년 벌이는 '호두까기 인형' 경쟁은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두 단체가 그 동안 '선의의 경쟁'을 벌인 결과,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관객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바이노넨 판을 기본으로 로이 토비아스와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일부 안무를 개정한 버전을 공연하고 있다. 나는 유니버설 발레단 버전도 여러 차례 봤다. 국립발레단 버전과 비교하자면 좀 더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인 느낌이다.)
2000년, 그리가로비치 버전의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끊임없이 일렁이는 춤의 물결에 빠졌고, 역동적이고 선 굵은 동작에 반했고,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기운을 뿜어내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취재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는 출연진이 바뀔 때마다 이 공연을 여러 차례 봤다. 혼자 공연을 보면서, 자녀와 함께 공연을 보는 다른 관객들이 부러웠다. 첫 딸을 출산한 지 5개월 지났을 때였다.
2000년 이후에도 나의 '호두까기 인형' 관람은 계속됐는데, 2001년의 '호두까기 인형'은 문화부 송년회로 기억된다. 사내에서 '역시 문화부답다'는 얘기를 들으며 야심 차게 계획했던 송년회. 당시 SBS 보도국 문화부원은 부장까지 합쳐도 5명, '차 한 대면 되는' 초미니 부서였기에, 하루 업무를 서둘러 끝내고 다 같이 '차 한 대로' 공연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의 양식당에서 멋진 식사를 하고, 8시에 시작하는 공연을 보는 걸로 송년회를 대신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앞날을 모르는 방송 기자들이 이런 '계획' 이란 걸 한 게 문제였다. 송년회 날, 하필이면 그날따라 일이 많아 출발이 늦었고, 우리는 결국 미리 예약해 놓았던 저녁 코스 정찬을 25분만에 헐떡거리며 숨가쁘게 해치워야 했다. 먹는 속도가 느렸던 나는 후식으로 나왔던 케이크는 맛도 보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커피를 후루룩 마시다 입천장을 데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날의 '호두까기 인형'은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비싼 코스 정찬을 맛도 음미할 새 없이 우걱우걱 집어삼킨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첫째 딸에게 처음으로 '호두까기 인형'을 보여줬던 해도 기억난다. 당시 수족관을 다녀와서 '물고기'에 푹 빠져있었던 딸은 '호두까기 인형에도 물고기가 나왔다'며 좋아했다. 의아했다. 호두까기 인형에 웬 물고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호두까기 인형'에서 물고기를 본 기억은 나지 않았다. 나중에야 딸이 뭘 보고 그러는지 알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물고기 장식이 있었던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과는 보는 눈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였다. 공연장 로비에서 파는 호두까기 목각 인형을 산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다. 실제로는 호두를 깔 수 없는 장식용 인형이었지만.
그 바쁘다는 정치부에서 근무할 때도 '호두까기 인형' 관람은 빼놓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니, 둘째 딸을 출산했을 때와 영국에서 연수하던 때를 제외하면 거의 매년 본 셈이다. 둘째도 2008년에 처음으로 '호두까기 인형'을 봤는데, 아무래도 너무 어려서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던 것 같다. 둘째는 '왕자보다 생쥐왕이 멋지다'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역시나, 어른과 어린이는 보는 눈이 다르다. 이 해 나는 호두까기 목각 인형을 또 하나 사고야 말았다.
지난해에는 내가 사는 고양시의 아람누리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관람했다. 둘째도 이번에는 내용을 잘 따라가면서100퍼센트 몰입해 보는 눈치였다. 마리와 호두까기 왕자가 결혼하는 장면에서는 자기가 괜히 수줍어하며 뺨이 붉어지기까지 했으니. 그런데도 이제 '호두까기 인형'을 여러 차례 봐서 '베테랑'이 된 첫째는 둘째에게 줄거리를 열심히 설명해 주려 했고, 둘째는 '설명 안 해줘도 다 알아'하며 잘난 척을 했다.
2010년, 나는 또 '호두까기 인형'을 보게 될 것이다. 처음 이 버전을 봤던 2000년과 비교하면, 무대장치도, 의상도, 안무도, 이제는 너무 친숙해 지겹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한 연말에는 다시 그리워진다. '뭐 하러 똑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똑 같은 공연'이란 없다. 공연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현장 예술이다. 볼 때마다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마리와 왕자 역으로 매년 새로 투입되는 무용수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올해는 이은원(1991년생이다!)과 신승원이 새로 마리 역을 맡았다. 관록의 김지영-김현웅 커플, 그리고 러시아 모스크바 콩쿠르 은상의 주역 김리회-이동훈 커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쌓아온 추억의 두께도 꽤 되는 셈이다.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예술의 전당 17일-25일, 고양 아람누리 25일-27일
*유니버설 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유니버설아트센터 22일-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