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소매치기 들치기 날치기는 범죄용업니다. 그것도 쩨쩨한 범죄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날치기는 국회의원들의 전공이 됐습니다. 아예 국어사전에 그렇게 정의됐습니다. 내년도 예산안 날치기 처리 현장 다녀왔습니다.
이정은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8일 낮 1시 45분, 2시로 예정된 본회의를 앞두고 한나라당 의원과 보좌진이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합니다.
입구를 막고 있던 야당 보좌진과 격렬한 충돌이 벌어집니다.
떠밀리듯 본회의장으로 진입하는 이재오 특임장관, 홍준표 의원은 멱살을 잡히다시피하며 끌려 나옵니다.
이상득, 정몽준 의원 같은 중진의원들도 몸싸움 대열에 합류합니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진입을 시도하다 떠밀려 바닥에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피신합니다.
회의장 진입 시도 10여 분만에 본회의장 정문을 사이에 두고 한나라당 의원과 보좌진이 밀려들면서 하나둘씩 가까스로 회의장에 들어갑니다.
오후 2시 반, 의결 정족수를 채운 한나라당이 회의장 문을 걸어 닫습니다.
오후 4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의장석을 점거한 야당 의원들을 하나둘씩 끌어내기 시작하면서 또 다시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의 허리띠가 풀릴 정도로 격투기에 가까운 몸싸움이 벌어집니다.
여성 의원들도 가세합니다.
30분 뒤 의장석에 있던 야당 의원들이 모두 끌려 내려갑니다.
여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에워싸고 박희태 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은 정의화 부의장이 본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
예산안 심사보고는 무선 마이크를 통해 약식으로 이뤄집니다.
[이주영/국회 예결위원장(한나라당) : 심사 결과는 여러분의 단말기에 자세히 게재돼 있기 때문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3백 9조 원이 넘는 새해 예산안이 한나라당 의원들 단독 표결로 통과됐습니다.
[정의화/국회 부의장 :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야당은 내내 야유와 구호를 외치며 날치기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렇게 난장판으로 막을 내린 연말 예산국회는 이번 정권들어 올해로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18대 국회 첫 해인 지난 2008년 12월의 예산국회.
한미 FTA를 둘러싼 극한 대결로 회의장 진입을 위해 전기톱과 해머까지 등장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해에도 '4대강 예산'을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폭력국회가 연출됐습니다.
3년째인 올해도 우리의 국회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올 예산국회는 동료의원끼리 주먹질을 하는 장면까지 공개돼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본회의장 진입을 놓고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던 상황.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이 멱살잡이를 하며 충돌합니다.
동료의원들의 만류로 일단 떨어졌지만 잠시 뒤 김성회 의원이 강기정 의원을 다시 찾아나섭니다.
강 의원이 뭔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김성회 의원이 주먹으로 강의원의 얼굴을 강타합니다.
[김성회/한나라당 의원 : XXX 맞았어. XX]
강의원이 피를 흘리며 반격을 시도하지만 옆에서 말립니다.
[기정아, 참아. 참아. 참아.]
두 의원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때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동료의원끼리 국회의사당에서 주먹질마저 서슴지 않는 모습이 우리 국회의 현 주소입니다.
주먹질못지않게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일은 또 있습니다.
한바탕 폭력사태까지 치른뒤에 통과된 새해 예산을 들여다 봤습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지역구인 포항과 울릉도 관련 예산을 정부원안보다 무려 1,623억 원이나 늘렸습니다.
'만사형통'이라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셈입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인 이주영 의원은 자기 지역구에 430억 원을 추가 배정했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182억 원,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33억 원,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65억 원을 지역구 예산으로 더 가져갔습니다.
겉으로는 싸우면서도 뒤로는 서로 지역구 예산을 적당히 챙겨주는게 이른바 정치 실세들의 모습입니다.
정부의 예산을 감시해야할 국회의원이라는 고양이들에게 오히려 예산이라는 반찬가게를 맡겨버린 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