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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제고사의 정치학

학업성취도 결과공개와 중학교 학력평가 폐지에 나타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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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시험 중에 이른바 '일제고사'란 게 있습니다. 뜻만 놓고 보면 일제히 동시에 친다는 시험. 일제히 치는 시험이 이름은 하나라도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해마다 1차례 보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16개 시도교육청이 거의 매달 번갈아 주관하는 '전국연합학력평가'로 나뉩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정부와 시도교육감이 이 시험을 다루는 방식은 판이합니다. 그 뒤엔 '정치'가 있습니다.

교과부 '학업성취도 평가'의 정치학

'원조' 일제고사는 교과부가 주관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입니다. 지난 7월 치러진 올해 시험은 지난달 30일 공개됐습니다. 재작년 이 시험이 시작된 뒤 처음입니다. 최근 2년 새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쩍 줄었으나, 지역별로는 학력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게 확인됐죠. 이제 학부모들은 현재 자녀의 학교와, 진학할 학교에 학력미달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모두 알게 됐습니다. 신문에는 상위권 초중고 리스트가 매일 아침 표로 정리돼 돌아다니고, '서열화'에 대한 우려와 '학력 향상'을 위한 정상적인 시험이란 주장이 대립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 시험을 왜 치르는 걸까요? 교과부가 밝힌 일제고사의 목적은 뚜렷합니다. 학력미달학생이 많은 학교를 찾아내는 것이죠. 교과부는 부진학교들을 찾아 국고를 지원하고 미달자들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노력합니다. 여기까진 교육당국의 마땅한 의무로 봐야 할겁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라면 논란이 없겠죠. 더 중요한 목적은 각 학교장과 교육청의 성과를 수치화해서 성과급이나 교부금 규모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전국 모든 학생의 성적정보를 확인하고 교육청과 단위학교에 대한 일종의 상벌권을 갖는 겁니다. 일제고사로 교육청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 일제고사의 정치학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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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알게 하는 것'의 차이

일제고사를 둘러싼 논란의 근원은 교과부가 그 결과를 공개한다는 데서 생깁니다. 성적 공개는 단순히 '지원'만 하기 위해선 필요 없는 절차입니다. 교과부만이 성적을 '알고' 지원 대상을 밝히면 그만이죠.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두 번째 중요한 목적이 있죠. 그냥 '아는' 건 아무런 정치적 효과가 없습니다. 아는 걸 모두가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과부는 늘 누군가에겐 성과급이나 교부금을 줘야합니다. 예산은 본디 지원하는 것인데 방식을 놓고 정치적 고민을 하는 겁니다.

모든 정치적 결정엔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왜 공개해야 하는가'를 학부모들에게 납득시킬 답이 필요합니다. 교과부가 해마다 강조하는 '기초미달학력' 학생 수가 답일 겁니다. 실제 교과부는 재작년보다 학력미달 학생이 절반 넘게 줄었다는 걸 힘주어 말합니다. 성적이 얼마나 나쁘고, 나아졌는가를 공개하는 건 교육당국이 해야 할 일이라는 논리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죠.

일제고사 결과와 지원금을 연계하면 예산을 타서 쓰는 시도교육청에 대한 통제력이 당연히 커집니다. 일제고사는 교과부의 지배력을 높이는 기능이 있습니다.

중학교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세 가지 논거

다른 일제고사 얘기를 해볼까요? 학업성취도 평가와 달리 16개 시도 교육감들이 시행하는 일제고사는 '전국연합학력평가' 입니다. 올해 시험은 오는 21일 중학교 1,2학년 대상 시험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중학교 1,2학년이 치르는 '일제고사'는 이맘때 1년에 1차례뿐이었는데요. 엄밀히 따져 이젠 중학교 저학년 대상 일제고사는 없어지게 됐습니다. 6개 시도 진보교육감들이 사실상 폐지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왜 이 시험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요? 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늦게 중학교 일제고사 폐지결정을 내린 서울시교육청은 시험 폐지가 필요한 이유를 세 가지 논거로 요약합니다.

먼저, 시험 자체의 실효성이 적다는 겁니다. 12월 말 치러지는 이 시험이 겨울방학 직전에 치러져 학생들의 관심이 낮고 평가 결과도 다음해 2월에나 통지돼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겁니다. 중학생은 지금 평가횟수도 충분히 많다는 논거도 있습니다. 3월 진단평가와 한 해 4차례 정기고사, 수행평가 까지. 여기에 굳이 시험부담을 더 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중학교 단계에서 필요한 교육은 평가식 경쟁유발 교육이 아니란 겁니다. 입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학생은 경쟁위주 교육이 아닌 창의,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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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와 광주, 전남이 이미 폐지 결정을 내린 이후 서울교육청도 지난달 25일 폐지에 동참합니다. 역시 진보교육감이 있는 강원과 전북은 학교가 시행여부를 결정하도록 해 사실상 6개 시도에서 일제고사가 사라진 거죠. 이제 중학교는 모든 학생이 일제히 보는 '일제고사' 없이 일부 시도에서 보는 연합학력평가만 남은 겁니다.

두 개의 일제고사, 두 개의 정치

교과부는 올해 처음으로 학교알리미 사이트(www.schoolinfo.go.kr)에 모든 학교의 학교별 학업성취도 결과를 공시해 학생과 학부모가 열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교조는 성명을 내고 "평가결과 공개로 학생과 교사 모두 시험에 몰두하게 됐다"며 비판했습니다. 진보교육감들은 성적공개가 학교 간 서열화를 고착시킬 거라 우려해 온 입장입니다.

공교롭게도 일제고사를 둘러싼 두 가지 결정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습니다. 예고된 일이긴 하지만 전혀 다른 행위가 비슷한 시간대에 일어나면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죠.

중학교 일제고사 폐지도 당연히 진보교육감들의 정치적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민선교육감으로서 공약을 이행하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곽노현 서울교육감은 내년엔 고등학교 전국연합학력평가도 반으로 줄일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노선을 가진 교육감들이 모종의 교감을 갖고, 일제고사 무력화의 신호탄을 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 명목적인 의미의 정치로 보입니다.

교과부의 일제고사 성적 공개와 지원금 연계 정책이 가진 정치적 함의는 이것과는 다른 의미로 보입니다. 그건 '타자(인)에 대한지배 강화'라는 좀 더 순수하고 본질적인 의미의 정치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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