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가 미국 정부의 강력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려 25만건의 문건을 공개했습니다. 미국 국무부가 전 세계 270개 해외공관과 주고받은 정보가 주된 내용인데요, 그러다 보니 그 안에는 미국 시각에서 다른 나라와 그 나라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사적인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가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무기력한 늙은이' 이런 식으로 평가한 거죠.
미국 시각에서는 역시 중동과 아프간 이런 쪽의 문건에 관심이 많았던 반면 한국 특파원들은 역시 한반도 관련 내용을 분석하고 찾아내는 데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그런 문건들도 상당수 들어있었는데요,
관심 가는 부분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겠습니다.
서울과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미 대사관이 문건의 주요 출처입니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북한 관련 부분 정보는 틀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무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는 물론 북한의 최대후원자인 중국조차 아예 처음부터 틀린 정보를 갖고 있었음을 위키리크스 공개문건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2009년 5월 13일 미국 위성은 북한 핵실험 장소에서 이상한 활동을 포착했지만 베이징의 공직자는 북한이 다른 핵실험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로 며칠후 북한은 핵실험 단행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안돼 중국 공직자는 6자회담이 단지 몇달동안 유보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도 6자회담은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북의 핵실험 직후 두 명의 중국 공직자들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이 초기 단계인 것으로 중국 전문가들이 믿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번달에 북한이 농축시설 공개한 것을 보면 그 때 이미 농축시설 건설중이었습니다.
미국과 중국 정보당국이 명백하게 오류를 범한 부분입니다.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에 대해서 중국도 전혀 아는 게 없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2009년 2월 미국의 북한관련 정보 수집 요로인 상하이의 한 정보원은 "북한을 가장 잘 안다는 중국인인들은 김정은이 후계자로 교육받고 있다는 소문을 믿지 않는다."고 보고했습니다.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몇몇 중국 학자들은 북한내 고위직 군인 그룹이 권력을 넘겨받을 것이며, 적어도 김정일의 세 아들중 누구도 김정일을 잇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큰 아들 김정남은 플레이보이짓으로 눈밖에 났고, 둘째 김정철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는 비디오 게임을 좋아하고, 막내 김정은은 너무 어리고 경험도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달안에 우지앙하오(중국 외교관)은 그의 미국 파트너에게 "김정일이 그의 어린 막내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의 빠른(연이은) 도발행위는 김정일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으며, 김정일이 미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기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나름대로의 노림수라고 우지앙하오는 지난해 6월에 말했습니다.
지난 2월 중국 선양의 정보원은 "김정은이 실패로 끝난 북한의 화폐개혁에 관여했었다는 소문과 김씨 집안 내부 권력다툼 (일부는 김정은의 섭정자가 되는 준비를 하고, 일부는 김정일 사후 김정은을 몰아내려는)에 대한 소문"을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문건에서는 남한 당국자들이 북한 내부 갈등이 폭발직전까지 올랐다고 판단하고 있었던 대목도 있습니다. 지난 2월말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와 만난 한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김정일 사후 2-3년안에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중국의 다음 지도부도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지배하는 통일 한국에 대해 불안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올 1월 당시 유명환 외교장관은 방한한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에게 "북한이 점점 혼란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 근무하던 다수의 북한 고위관리들이 최근 한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보당국이 그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조사중입니다.그래서 이 사실은 아직 대외비로 하고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지난 7월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와 만나 김정일 위원장의 통제력이 굳건하지만 한국 전문가들은 그가 2015년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지난 1월 김위원장을 만났을 때 머리에 뇌수술 흉터를 발견하지 못했고 곧 죽을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고 한 말도 현장관은 캠벨 차관보에게 전했습니다.
한국이 중국에 불만이 많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스티븐스 대사는 '중국이 북한을 붕괴직전까지 몰아부치지 않는 한 북한은 핵프로그램 포기를 거부할 것'이라는 한국 당국자들의 인식을 미국무부에 보고했다.
천영우 현 외교안보수석은 외교부 차관이던 지난 1월 스티븐스 대사와 점심자리에서 6자회담에서 "중국이 아무런 의지 없이 임하고 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특히 우다웨이는 가장 무능한 공직자로서 오만하고 북한과 핵비확산에는 무지한 홍위병 출신 인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문건들은 또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스러져가는 독재왕조의 말로의 징후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009년 9월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다이빙궈 국무위원과 만났을 때 다이빙궈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경험을 조크로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쇼크 후유증으로 병들고 체중도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샤프한 정신을 갖고 있었고 무엇보다 중국 공직자들 사이에 퍼진 김위원장은 아주 술을 잘 마신다는 평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2시간동안의 회동에서 김정일은 끊임없이 술을 마신다는 얘기를 했다고 돼있습니다.)
또 김정일위원장이 뇌졸중과 여타 질환으로 점차 결정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습니다.
2009년 12월에 김위원장을 만난 중국 고위당국자는 "건강악화로 김위원장이 결정을 번복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의 신임을 받으려넌 여러 세력이 각자 다른 방안을 제시해 단호한 결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북한 학생 1명이 망명한 이후 현지의 학생과 과학자들을 모두 귀국시키려다가 번복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는 북한 사람들을 정신병적이라고 묘사하고 김위원장을 경기장을 활보하며 과찬을 갈구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음 북한의 지도자(김정은)가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상황 대처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어가는 것을 볼 준비도 돼있지 않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 문건에 거론된 한국의 고위당국자들은 적잖이 당황했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현직에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자칫 앞으로의 공직 수행과정,특히 외교부분의 공직자는 상대방을 대하기가 껄끄러월 수도 있습니다. 한국 정부의 정보력과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한 얘기가 이런 식으로 공개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세상에는 비밀은 없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문건 내용중에 북한과 관련된 정보들이 틀린 경우가 많다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어쨌든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핵심에서 일어난 일과 나온 얘기들이 이렇게 저렇게 공개되기도 합니다. 북한 내부의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할 뿐 결국은 다 공개될 것 같습니다.
위키리크스 문건을 보면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기자일과의 연관성도 떠올랐습니다. 기자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취재원으로부터 어떤 얘기를 듣고 그 내용중에 기사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고, 기사를 써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입니다. 그렇게 들은 얘기를 이렇게 저렇게 보도국에 알리면 다른 기자들도 취재하는데 참고하고는 하죠. 그렇다면 제가 하는 일도 결국은 정보를 다루는 것이고, 저 역시 정보전의 한 가운데 있는 셈이 됩니다.거꾸로 말하면 제가 한 말과 행동도 어떤 형태로든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지고 전달됐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도 돋습니다만, 그저 상식과 원칙을 갖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문건 공개를 위해 선택한 언론사들 가운데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사고를 통해 이 문건을 공개하기로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국가에 막대한 인적ㆍ물적 부담을 요구하는 크나큰 결정들을 어떻게 하는지를 이 전문들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공개를 결정했습니다. 이런 정보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독자들이 신문에 기대하는 신중한 보도와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하기 위해서 문건 공개에 동참했습니다. 전문이 가진 대중의 이해에 이바지하는 자료로서의 가치와 국익에 해를 안겨줄 수 있는 여지를 자세히 검토해 자료 중 비밀 정보원을 위태롭게 하거나 미국의 국가 안보에 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은 공개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게시하기로 한 전문들을 미국 정부에 통보해 정부 시각에서 국익에 해를 줄수 있는 정보인지를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정부 측 판단을 수용해 일부 내용은 편집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원래 위키리크스 설립자로부터 문건을 줄테니 기사를 써달라는 초대를 받지 못했지만 영국의 가디언지로부터 전문을 넘겨 받았다고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위키리크스 설립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사를 썼던 악연때문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건데요, 그럼에도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유력 언론 가운데 이번 문건 공개에 참여한 유일한 언론사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