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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로씨 유골 그리던 어머니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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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조센진'이라고 모멸한 야쿠자를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여 재일교포의 인권과 차별문제를 일본 사회에 부각시켰던 고(故) 권희로씨가 한줌 재가돼 고향에 귀환, 그리던 어머니 묘소를 참배했다.

30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지난 3월 부산에서 사망한 권희로씨의 유골이 29일 권씨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시즈오카(靜岡)현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권씨 생전 장기간에 걸친 석방운동을 주도했던 부산 자비사의 박삼중 스님은 권씨의 유골을 안고 시즈오카현 가케가와(掛川)시에 도착해 지난 1998년 사망한 권씨의 모친 박득숙씨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권씨의 모친 박씨는 생전 박 스님에게 무기징역형을 받고 투옥중이던 아들의 가석방을 실현시켜 만나게 해달라고 누누이 부탁했었다. 박 스님은 "약속대로 아들을 데리고 돌아왔다"고 박씨의 묘소에 보고했다.

권씨는 사망하기 10일전 자신이 죽을 경우 "시신을 화장해 유골의 반은 선친의 고향인 부산 영도 앞바다에 뿌려주고, 반은 시즈오카현 어머니 묘에 묻어달라"고 유언했었다.

권씨는 41세이던 1968년 2월 20일 시즈오카현 시미즈(淸水)시에서 폭력조직인 야쿠자 요원들이 빌려쓴 돈을 갚으라고 협박하며 "조센진, 더러운 돼지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자 엽총으로 야쿠자 두목과 그 부하를 사살했다.

살해 후 그는 현장에서 45km 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 스마타쿄(寸又峽)의 후지노미 온천여관으로 들어가 여관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일본에서 살면서 온갖 차별과 모별을 겪었던 그는 인질극을 통해 재일교포의 차별문제를 부각시키는 기회로 최대한 활용했다. 당시 사건은 일본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고, 그의 인질극은 TV와 신문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그동안 쉬쉬하던 재일교포의 인권과 차별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인질극을 지켜보던 어머니 박씨는 아들에게 한복 한벌을 건네준 뒤 "일본인에게 붙잡혀 더럽게 죽지 말고 깨끗이 자결하라"고 비장한 각오를 보였다.

권씨는 한국에서 일어난 귀국운동에 힘입어 모친이 숨진 다음해인 1999년 9월7일 '일본에 다시 입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가석방됐고, 영주 귀국해 부산에서 생활하다 지난 3월 26일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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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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