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눈물의 연평도는 이제 공포와 분노의 연평도입니다. 주민들이 떠난 유령섬이 돼버렸습니다. 활기 찼던 선착장도 주민들이 담소하던 구멍가게도 텅 비었습니다. 사람 살던 곳이 화약냄새나는 전쟁터가 됐습니다.
이호건 기자가 현장취재했습니다.
<기자>
인천 연안부두에서 북서쪽으로 122킬로미터, 북한 개머리 해안포 진지와는 불과 12킬로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
그곳에 북한군 포격으로 초토화된 섬, 연평도가 있습니다.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에 500여 가구 1,600여 명이 살았습니다.
무려 170여 발의 포탄이 날아들었던 이곳 섬 남쪽 항구는 피란을 떠나려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갈 분들 빨리 타세요.]
[(짐 많이 챙기셨어요?) 별로 못챙겼어요. 옷가지만 챙겼어요.]
항구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
지난 23일 하늘로 치솟던 검은 연기는 이제 멈추고, 지금은 적막감만이 가득합니다.
마을 초입에 이르자 당시 충격과 공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3층짜리 건물이 포탄에 맞아 만신창이가 됐고, 차량은 피폭의 충격으로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습니다.
[연평도 주민 : 차가 박살나고 그냥 피신했었는데 못살아요. 연평도에. 앞뒤로 여기 다 쏟아지는데 나오니까 뻥 터지는데 그냥 정신이 뻥뻥 거리는데 사람이 살 데인가요.]
섬의 중심지인 연평 면사무소로 가는 길.
마을 안 쪽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더 참혹합니다.
시멘트 바닥 여기저기 포탄이 떨어져 움푹 패인 곳이 한두곳이 아닙니다.
가옥들은 대부분 검게 그을린 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무너져 내렸고 창문들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폭발로 인한 엄청난 열에 완전히 녹아내린 집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포탄을 맞은 민가는 보시는 것처럼 새까맣게 불타버렸습니다.
집안에서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엉망이 된 집을 찾은 주민들은 할 말을 잃고 망연자실합니다.
[연평도 주민 : 집 좀 점검하고 나가려고. 지금 안이 엉망이에요. 다 떨어져 나가고 깨지고 문도 안 잠기네.]
하지만 절망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
북한군 공격 당시 정신없이 몸만 빠져나왔던 주민들은 미처 챙기지못한 짐을 싸느라 마음이 급합니다.
[연평도 주민 : (포격날)있다가 피난 갔어요. (그날 짐 하나도 못챙기신 것이에요?) 네. 짐 하나도 못챙겼어요. 신발도 못 신고 양말 만 신고 나갔어요. 굉장했어요. 사람 목숨만 건진 것도 다행이에요.]
전쟁의 극한 공포를 겪은 주민들은 연평도에서 더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연평도 주민 : (다시 돌아오실 생각 없으세요?) 네. 지금 배 타려면 시간 없어요. 빨리 나가야되요.]
[연평도 주민 : 정부 고위 사람들이 연평도 살아봐요. 살아가지고 우박같이 떨어지는 포탄을 한 번 봐야 연평도가 살 데인가 못 살 데인가 알 것이에요. 육지로 나가야죠. 20년 산 데지만 이젠 못살아요. 힘들어서.]
주민들은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육지로 나가는 배 위에 몸을 싣습니다.
고단한 피란길.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연평도 주민 : 찜질방으로 간대잖아요. 지금. (묵으실 데 있으세요? 찜질방 말고?) 없어요. 집도 없는데 어디에 있어. 돈 떨어지면. 가서 자야지 뭐 어떡해.]
북한군의 무자비한 포격으로 주민들은 오랜 삶의 터전을 잃었고, 서북단의 '대한민국 영토' 연평도는 '유령섬'이 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