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중국 충칭(重慶) 시내 번화가에서 벌어진 장면입니다. 청년 3명이 길바닥에 누워 있습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무슨 퍼포먼스를 하나?'하고 다가가 봤더니, 이 사람들… 술에 잔뜩 취해 기절한 것이었습니다.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만취한 젊은이는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인사불성의 청년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싶어서 사람들이 구급차까지 불렀습니다.
주량(酒量)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
사연은 기가 막혔습니다. 내년 졸업 예정인 대학생들인데 영업사원 일자리를 얻기 위해 2차 면접을 봤더랍니다. 그런데 회사 측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더니, "어디, 술 얼마나 마시는지 보자"고 했고, 어떻게든 취직하고 싶은 욕심에 너도 나도 술 마시기 경쟁을 벌였던 겁니다. 결국 요즘 한국에서 흔히 하는 말로 '꽐라'가 된 거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네티즌들은 음주 경쟁을 붙인 회사를 성토하면서도, '주량'이 실력의 하나로 인정되는 중국의 풍토를 개탄했습니다. '꽐라'라는 말은 중국어에서 온 것 같은데, 过了([guole], 한도를 넘었다) 혹은 够了([goule], 이미 충분하다)의 발음이 한국인들 귀에는 '꽐라'라고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도 최근에 중국에 가보지 않았다면, 이 기사를 '특별한 경우'로 받아들였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술을 시원하게 잘 마시고 끄떡없이 일 잘하는 사람을 능력자로 인정하는 게 중국 사회였습니다. 한국에 비해 사회생활이 더 활발한 중국 여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후래자(後來者) 3배 아니라, 모두 3배
점심이건 저녁이건 술을 마시기로 하면 일단 석 잔을 들이킵니다. 36도에서 52도 가량 하는 독한 고량주(白酒)를 내리 석 잔 마시고 나면 머리가 순간 어질해집니다. 그 다음부터는 손님 대접을 한다고, 자리를 마련한 측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모든 사람과 1:1로 돌아가며 한 잔씩 마십니다.
잠시 뒤, 다시 한 사람이 일어나 같은 과정을 반복합니다. 일어서서 한 바퀴 도는 사람도 고역이지만, 앉아서 술잔을 맞는 사람들도 술이 약하면 결코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손님들도 한 잔씩 돌리라"는 청이 이어집니다. 많은 사람들과 1:1로 마셔야 하는 겁니다. 일어서 술을 권하는 손님도 고생이지만, 앉아서 대작하는 다른 손님도 계속 한 잔씩 마셔야 하고 조금 뒤에는 그도 일어서서 한 바퀴 돌아야 합니다.
주빈(主賓)은 더 고역입니다. 손님 중에 으뜸이니 "한 잔 더 돌려야 한다"는 겁니다. 주빈한테는 생선 대가리를 먼저 먹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데, 주빈은 몇 점 떼어 먹고는 다시 "간베이(干杯)"를 반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뒤가 더 고약합니다. 손님들이 지쳐갈 때쯤 다시 자리를 마련한 측에서 일어서서는 술 한 잔씩을 권하는데, 자신들은 술이 아닌 물이나 음료를 들고 권합니다. "왜냐"고 물으면, "과거 중국은 잘살지 못했기 때문에 주인은 먹지 않고 손님에게 더 권하는 게 미덕이었다. 그 관습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답합니다.
"이제 중국도 먹을 만큼 사니, 평등하게 마시자"고 해도 요지부동입니다. 그래도 손님 대접한다고 하는데, 얼굴 붉히면서 ‘안 마시겠다’ 할 수 없어 받아 마시다 보면 자신의 주량을 훌쩍 넘어서기 마련입니다.
"감사하긴 한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그래도 이 잔은 작지 않나? 네이멍구(內蒙古)에 가면 고량주를 맥주잔으로 주면서 이렇게 돌린다."
"관시(關係) 위해 마시다보면 간이 다 녹는다."
베이징에서 만났던 한 한국 기업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취(大醉)하는 술자리를 3번 정도 해야 이른바 관시(關係)가 만들어진다. 그때 비로소 사업 얘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간(肝)이 다 녹는다"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업 전선에서 자주 술을 마시다가 어느 날 아침 숨을 거두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셔야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대놓고 말을 못 한다"
경제 성장의 발동이 늦게 걸린 중국의 정조우(鄭州)에서는 도처에서 <名酒, 名煙>이란 간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파는 상점이 엄청나게 많은 겁니다. 어지러울 정도의 급속한 경제 성장 덕분에 돈은 돌지만 별달리 오락거리가 없는 중국인들에게 술과 담배는 여전히 큰 위안거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술이 넘치는, 술을 권하는, 술 실력이 능력으로 평가되는 중국에서 며칠 지내다보니, 잠을 자다가 몇 번이나 깰 정도로 식도염이 심각해졌고 결국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개비00'이라는 약을 쭉쭉 빨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겪은 호된 경험과, 제가 어렸을 때 지금 맥주병 크기의 4홉들이 소주 심부름을 하던 한국의 풍경이 참 닮았다. 그렇다면 '술 문화'에서 한국은 좀 나아졌는가? 글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술 마시는 양이 적잖게 줄긴 했지만, 술로 뭔가를 보여주고 술자리에서 뭔가를 이뤄보려는 사회 풍토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다.
사회 발전과 술 문화는 어떤 관계일까요? 중국인들은 한국인을 칭찬하면서 흔히 "중국인에 비해 예의가 바르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젊은 중국인 가운데서 지나치게 적극적인 술 권하기 관습을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중국도 ‘음주강권(飮酒强勸)’의 강도가 점차 약해질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