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넉 달 만인 16일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물가 불안을 더는 내버려둬선 안된다는 압박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환율전쟁'이 다소나마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수 있다. G20 회의에서 자본 유출입 규제의 명분을 얻은 것도 인상에 따르는 부담을 덜어줬다는 평가다.
우리 경제의 회복세에 견줘 기준금리가 여전히 지나치게 낮다는 인식과 통화정책에 중요한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한은이 여러 차례 시장에 보낸 인상 신호를 준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내 경제의 회복 속도가 점차 느려지는 데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가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라 추가 인상은 해를 넘길 확률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점쳤다.
◇'통제범위' 벗어난 물가, 금통위 압박
중앙은행의 지상 과제가 물가안정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가을 '배춧값 파동'에서 비롯한 물가 불안은 16일 기준금리 인상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다.
농수산물 가격의 폭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9월 3.6%, 10월 4.1%를 기록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인 3.0±1.0%를 벗어난 수치다. 허용 범위를 0.5에서 1.0으로 늘린 지난해 11월 이전 기준으로 보면 두 달 연속 목표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더구나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22개월만에 가장 높은 5.0%를 기록해 상당 기간 물가 상승률이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고됐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내외신 기자 브리핑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 정도로 예상한다"며 내년에는 3%대 중반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물가 상승률만큼이나 한은이 걱정하는 것은 소비자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다.
작황 부진 같은 일시적인 공급 요인으로 물가가 불안해진 것뿐일 수도 있지만, 한 번 높아진 물가 상승률은 보이지 않는 심리적 영향도 주기 때문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9%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는데도 기준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인플레 심리를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증권 박혁수 채권전략팀장은 "근원물가마저 불안해지면 기준금리를 더 가파르게 올려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G20 환율합의, 자본유출입 규제도 한몫
금통위가 지난달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것과 대내외 여건이 달라진 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G20 정상회의를 거쳐 '환율전쟁'이 조금이나마 숨 돌릴 틈을 찾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각국이 경쟁적인 통화가치 절하를 자제하고 환율 유연성을 높이자는 데 합의하면서 '경상수지 가이드라인'도 내년까지 의견 접근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G20 정상회의 폐막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환율 문제도 일단 흔히 쓰는 전쟁에서는 벗어났다"고 밝혔다.
그동안 설왕설래하던 자본 유출입 규제가 G20을 거쳐 한층 탄력을 받게 된 점도 기준금리 인상의 명분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G20은 지난 12일 정상회의 선언문에 급격한 자본이동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심해진 신흥국에 대해 거시건전성 규제 도입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금통위가 내외 금리차를 확대해 환율 하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주장에 맞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는 명분을 얻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금융연구실장은 "자본 유출입을 규제는 미국의 양적완화에 따른 환율 하락 압력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금통위가 환율에 대한 부담을 덜면서 물가안정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뜻이다.
이 밖에 6%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에 비춰 기준금리가 너무 낮다는 인식과 정책 수단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인상론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올해 추가 인상은 없을 듯"
금통위가 올해 하반기들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올렸으니 이제 추가 인상은 해를 넘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금통위가 금리 동결의 이유로 자주 거론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해 우리 경제의 성장 경로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한은은 내부적으로 추가 인상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겠지만 경기가 빠르게 냉각되면 가파른 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환율전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도 언제든지 추가 인상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증권 박혁수 팀장은 "환율전쟁이 마무리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며 "환율도 하락 압력이 지속할 수 밖에 없어 기준금리는 내년 1분기와 2분기에 한 차례씩 점진적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물론 금통위가 예상보다 빠르게 기준금리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김윤기 경제조사실장은 "내년에는 선진국 경기의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데다 재정위기나 환율전쟁 등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점차 축소될 것"이라며 "상반기 중 세 차례 인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