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의 새 주인을 결정하기 위한 주사위가 던져졌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15일 예상대로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최종 입찰제안서를 제출하면서 두 그룹이 인수의향을 공식화한 지난 9월27일 이후 49일간 전개한 싸움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두 그룹의 최종 입찰 참여는 예정된 수순이지만 입찰 가격 제시 등 '답안지' 제출로 재계의 이목은 온통 집안 싸움으로 번진 현대가(家)로 쏠리고 있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적어도 탈락한 그룹은 심한 내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매각공고에서 본입찰까지 = 인수전(戰)에 먼저 뛰어든 것은 현대그룹이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연초부터 현대건설 인수를 확실한 신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올해 추진할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공공연히 밝히면서 강한 의욕을 보였다.
현대그룹의 사전 정지작업이 한창일 무렵 현대차그룹의 인수전 가세 전망이 불거졌지만, 현대차그룹은 "결정된 바가 없다"는 유보적인 태도만을 취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을 불과 나흘 앞둔 지난 9월27일 인수전 참여를 공식화하면서 현대가의 피 말리는 혈투가 막을 올렸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와 제철에 더한 '미래성장을 위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현대그룹은 '잃었던 기업을 되찾는 것'을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명분으로 각각 내세우면서 일전을 예고했다.
지난 10월1일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 결과 예상대로 두 기업만이 인수 의사를 밝혔고, 이는 인수합병(M&A)이라는 기업적인 측면과는 별개로 한 뿌리를 가진 두 그룹이 완전히 등을 돌리는 공식적인 시발점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의향서를 제출한 지 한 달도 안 된 지난달 19일 현대건설의 발전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을 유감없이 표출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모종의 의도를 가지고 현대건설 인수를 시도하고 있다는 이른바 '네거티브 전략'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심리전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인수전에 가세할 조짐이 보이던 지난 9월21일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라는 TV 광고로 여론 조성에 나서다 현대차그룹이 본격적으로 가세하자 상대방을 비난하는 네거티브 광고로 싸움에 불을 댕겼다.
현대그룹이 일각에서 제기된 현대차그룹의 경영승계 시나리오 설까지 거론하며 자극했지만, 현대차그룹은 이런 공방이 자칫 현대가의 이전투구 양상으로 비칠 경우 타격을 입는 쪽은 자신들이라는 점을 우려해 심리전에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오히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0일 "정해진 절차와 규정에 따르겠다"고 하는 등 상대방의 네거티브 전략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이런 와중에 현대그룹이 재무적 투자자로 공을 들인 독일 엔지니어링 기업인 M+W그룹이 최근 컨소시엄 참여를 철회하면서 현대그룹에 부담을 안겼다.
이번 인수전이 그룹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안팎의 잡음도 있었다.
현대건설 퇴직 임직원 모임인 현대건우회는 지난 2일 광고를 통해 "과도한 차입금 등으로 인수기업이 부실화하고 이로 인해 현대건설마저 동반 부실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사실상 현대그룹을 비판한 데 이어 같은 날 현대건설 노조도 현대차그룹을 옹호하는 듯한 광고를 내 현대그룹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현대차그룹 역시 지난 11일 현대차노조 등이 소속된 전국금속노조로부터 현대건설 인수가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승계 목적이라며 인수중단을 요구받기도 했다.
◇누가 막판에 웃을까 =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은 모두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이르면 16일 채권단이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여전히 승자가 누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입찰의 최우선 조건이 가격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현대차그룹이 한 발짝 앞서 있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이번 입찰에서는 비가격적 요소도 특히 강조된 만큼 현대그룹에 대한 희망 섞인 전망도 없지 않다.
채권단은 이번 입찰에서 현대건설 보유주식 약 4천277만4천주(총 발행주식수 대비 38.87%) 중 3천887만주9천주(34.88%)를 매각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인수가격은 3조5천억~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컨소시엄을 구성한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의 유동성 자산만 10조원에 달해 무차입 인수가 가능한 상황이다.
반면 현대그룹은 이미 확보해둔 현금과 현대상선 등 주력 계열사의 유상증자와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모은 자금과 투자유치 자금 등으로 4조원 이상을 끌어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이 일부 감정적인 부분까지 건드려가며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했던 점을 고려하면 적정가를 훨씬 웃도는 가격을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이 지난 11일 "지나친 가격경쟁에 따라 인수회사와 피인수회사가 동반 부실화하는 '승자의 저주'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아무리 높은 가격을 적어내더라도 모기업과 현대건설에 부담되는 비현실적인 액수는 배제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이라는 실탄이 최대 강점으로 부각되는 현대차그룹은 물론, 열세의 자금력에도 이번 입찰에 그룹의 사활을 건 현대그룹 모두를 향한 사전 경고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이 밖에 자금조달 계획과 능력, 경영계획 및 능력, 약속사항 이행, 사회·경제적 책임 등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는 점이 이번 승부를 더욱 흥미롭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