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쟁점에 대한 양국의 협의가 '한국의 쇠고기 시장 고수, 미국에 자동차 시장 개방 확대'로 가닥을 잡으면서 타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8일 열린 한미 통상장관 회의는 물론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진행된 실무급 협의에서도 한국의 예상을 깨고 쇠고기 문제에 대해선 거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의 전면 시장 개방은 미국의 주요 관심사이긴 하지만 2008년에 쇠고기 시장 완전 개방을 약속했다가 한국 정부가 `촛불시위'로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렸다는 점을 미국 측도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올해 들어 8월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증가해 미국 측으로선 굳이 한국 국민의 저항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완전 시장 개방을 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정부가 애초부터 일관되게 "쇠고기 문제는 FTA와 별개의 문제"라고 확고한 입장을 밝혀온 점도 미국으로 하여금 `쇠고기 카드'를 접게 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자동차 시장 개방 확대에 역점을 뒀고 우리 정부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분석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첫날 통상장관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통해 한국의 자동차 안전.연비.온실가스 기준을 완화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 측은 우리(한국) 시장에서 미국차 시장 점유율이 1%도 안 되는 상황에서 안전.환경기준을 시장 진입의 장벽으로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 강화가 국민의 안전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당한 정책목표임을 강조하면서도 이런 정책의 수행과 과도한 시장진입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는 측면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과제라고 밝혔다.
미국 측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쟁점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악마는 세부내용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큰 틀의 합의에도 한미 양측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중의 하나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기준 및 연비.온실가스 등 환경기준을 어떤 기준으로 얼마 동안 예외로 인정해주느냐 문제다.
한국은 오는 2015년부터 현재 15km/ℓ인 연비를 17km/ℓ로, 온실가스 배출량도 현재 159g/km에서 140g/km로 강화할 방침이며 향후 3년간 판매대수 1천대 미만에 대해서만 이를 예외로 인정한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연간 판매량 1만대 이하에 대해선 아예 이를 적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어 양측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안전기준과 관련, 미국은 자국 안전기준을 충족한 자동차는 한국에서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안전기준은 일종의 주권행위에 비유되기도 해 한국으로선 이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례로 한국의 안전기준을 통과한 한국산 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그대로 판매되지는 않는다.
특히 한때 미국은 양국 간 자동차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아시아 국가의 미국산 자동차 평균 점유율에 근접한 수준으로 한국이 미국차를 수입하도록 약속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이를 끝까지 고집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아시아 시장에서 미국차의 점유율은 2.0~2.5%에 달하는 반면에 한국시장에서 미국차 점유율은 1%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완성차를 판매할 경우 제3국에서 수입한 자동차 부품 관세환급의 상한선을 정하는 문제는 한.유럽연합(EU) FTA 사례를 적용, 5%로 하기로 양측간에 의견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25%인 관세를 10년간 단계적으로 폐지토록 한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조정 문제도 한국에서 픽업트럭이 생산되지 않고 있어 양측간 절충의 여지는 있다는 후문이다.
쇠고기 시장의 완전 개방을 막은 대신 자동차 시장을 더 열어주는 것으로 협상이 마무리되더라도 이번 협의 결과를 놓고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FTA 논의 과정에서 한국이 수세적인 입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는 내줬어도 하나는 지켰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방한 협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시장을 추가 개방하더라도 미국산 자동차의 경쟁력이 떨어져 실제로 수입될 추가 물량은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또한 이번 협상 결과가 그동안 먼지만 쌓였던 한미 FTA 협정문이 미국 의회로 하여금 비준 동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기존에 체결한 FTA 협정에서 한국 측이 양보, 추가로 자동차 시장을 더 내주는 결과를 초래한 불만족스러운 협상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내주기만 하고 얻어낸 것이 없어 결국 기존 협정문에서 강조했던 `이익의 균형'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