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탐색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아직껏 회담재개의 여건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분위기이지만 제각기 재개의 해법을 놓고 서로의 수(數)를 타진해보는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평양이 그 시발점이 되고 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북한이 6자회담 재개를 향한 전향적 시그널을 공개리에 발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先)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이행조치를 주문하고 있는 한.미의 공동 압박전선에 대한 일종의 '응수'에 나선 셈이다.
김 부상의 방중에 따른 북.중 협의의 결과물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핵심은 '유연해진 북한'으로 평가된다. 기존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겨냥해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려는 북한의 태도를 보여주려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분석된다.
김 부상이 지난 15일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행한 발언이 태도변화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김 부상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준비가 돼있다"며 "(제재해제를 위한) 방법을 찾으면 있을 수 있다. 서로 접촉을 활성해나가자"고 말했다.
김 부상의 9.19 공동성명 이행 준비 언급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한.미가 요구하고 있는 비핵화 조치 주문에 대해 일종의 '답'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곧바로 이튿날인 16일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되풀이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외교가가 주목하는 또다른 언급은 "제재해제와 관련해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회담복귀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제재 해제문제에 대해 북한이 일정한 양보를 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북한의 태도변화 징후를 근거로 6자회담의 장(場)을 세우려는 중국은 앞으로 6자회담 재개 드라이브에 본격 시동을 걸 가능성이 점쳐진다. 중국으로서는 이번 북.중 협의를 계기로 북한의 태도가 변화했다고 평가하며 회담재개 공론화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현재 관련국 내부의 분위기로 볼 때 평양발 6자회담 재개흐름이 과연 호응을 가져올 수 있을 지를 놓고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미가 유화공세의 이면에 도사린 북한의 '저의'에 대해 불신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국의 중재역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은 분위기다.
특히 정부내 일부 당국자들은 김 부상이 중국 방문과정에서 내놓은 언급들에 대해 평가절하하며 과도한 의미부여를 경계하고 있다.
김 부상의 9.19 공동성명 이행 언급은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비핵화를 이행하려는 명료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게 이들의 지적이다. 특히 9.19 공동성명은 비핵화 이행 뿐만 아니라 평화협정 내용도 들어가있어 북한이 '선(先) 평화협정' 주장을 활용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또 "제재 해제를 위한 방법을 찾자"고 언급한 것은 결국 북.미간 접촉의 명분을 마련하고자 하는 저의가 깔려있을 것이라는게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정부 소식통은 "현단계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전에 북.미간 접촉은 어렵다'며 "제재 해제는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검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태도변화 징후와 이를 근거로 한 중국의 중재 움직임은 점진적으로 회담 재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의 최근 행보는 내부 권력승계의 '연착륙'과 경제난 해소 차원에서 대외관계의 정책적 변화를 꾀하려는 북한 수뇌부의 의지가 반영돼있다는 점에서 정세의 흐름에 따라서는 '가시적 액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한미의 요구를 의식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핵시설 모라토리엄 선언과 같은 상징적 조치를 전격적으로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움직임은 내부적 절박성 때문"이라며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 지를 놓고 상당한 고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일정한 시점에서 비핵화와 관련한 상징적 조치를 취하면서 회담재개를 촉구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한.미도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 6자회담 재개 흐름은 마치 '압축파일'이 풀리듯이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16일 "9월 이후의 화해공세는 고도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조선(북한)이 항상 놓칠 수 없는 과제로 간주해 온 것이 북남관계 발전"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최근 한.미의 '남북관계' 개선 주문과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이런 맥락에서 18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제21차 동북아협력대화(NEACD)는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5자 내부의 컨센서스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이벤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