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27일) 저녁 워싱턴 특파원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낮에는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과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10일동안은 러시아와 독일,프랑스,브라질을 방문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체 일정이 무려 8박 12일인데, 그 사이에 지구를 한바퀴 정도 돈 셈입니다.
또 전체 일정가운데 4일을 비행기안에서 잤으니 강행군도 이런 강행군이 없습니다. 윤증현 장관 일행이 이렇게 한가위 연휴를 끼고 세계를 돈 것은 11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서였습니다. 개최국으로서 정상회의에서 의미있는 성과물을 내놓기 위해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거죠.
사실 국제회의나 각 나라 정상들이 모이는 회담의 경우 일종의 보여주기 성격이 짙어 결론도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는 국제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국제적 경제,금융 기준을 내놓자는 게 우리나라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우리나라 경제장관이 국내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이슈를 놓고 세계 각국을 도는 출장 자체가 어떤 면에서는 처음 아닌가 싶네요.
이 날 윤장관은 자신의 그런 역할 보다는 자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성장한 대한민국의 발전사를 여러차례 강조했습니다.독일을 갔을 때는 독일의 재무장관과 분데스 방크 총재를 잇달아 만나 환대를 받았고, 유럽중앙은행의 프랑스인 총재는 영빈관서 저녁식사를 대접했다고 합니다.그러면서 각각 자신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고 하고요.
윤장관 일행은 독일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에게는 "독일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해 글로벌 금융안전망에 부정적인 것은 이해하지만 이번 G20정상회의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나라에만 적용하도록 수정안을 마련할테니,협조해달라. 같이 살려면 있는 집이 없는 집을 도와줘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은 수중발레 선수 출신으로 영어까지 완벽한 인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현재 유럽연합 국가 재무장관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도 받는다고 했습니다.
프랑스는 자유의지의 나라니까 IMF개혁을 위해 협조해달라고 했고, 흔쾌한 동의의 대답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회의가 끝난 뒤에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집무실로 안내해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여줬는데, 입이 벌어질 정도의 명화가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그래서 집무실만 한국에 팔면 안되겠느냐고 농도 했다고 하고요.
미국에 와서는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버냉키 총재를 났는데, 현재 미국과 유럽이라는 양대축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아직도 세계경제가 불확실한 상태니 경기회복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유럽은 금융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거죠.
중간에서 거중 조정역할을 개최국인 한국이 해야 한다는 것, 그 것이 바로 윤증현 장관이 말하고 싶어했던 내용입니다.
예전에 IMF같은 국제기구 회의에 가면 높은 사람은 고사하고 국실장급 실무자를 만나는 것 조차 버겁고 힘들었던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제는 어느 나라,어떤 기구를 가도 최고 책임자들의 환대를 받는다는 것, 그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얘기하고 싶어했습니다.
실제로 윤장관이 사무관시절에는(한 30년전쯤의 얘기입니다.)IMF이사는 하늘처럼 생각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IMF에서 매니저급으로 일하던 미세스 리라는 한국 여성분이 유일한 백이었다고 얘기하면서 추억에 젖기도 했습니다.더우기 G20같은 덩치 큰 국제회의에 한국은 끼지도 못해서 그 회의에 다녀온 일본 공무원들을 찾아가서 귀동냥을 하고 그 친구들이 큰 소리 칠때면 아니꼽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윤장관이 어디를 가나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격세지감도,이런 격세지감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구한말 러시아 공사를 지낸 이범진 공사(헤이그 만국회의에 참석했던 이위종 선생의 부친)의 묘소를 참배했다고 합니다.힘없는 조국이 끝내 일제에 강제병합되는 것을 보고 분을 참지 못해 자결하신 이범진 선생이 지금 하늘에서 후손들의 활약과 발전한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해 하실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합니다.
남미의 최강국 브라질은 윤장관 일행에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7대의 경찰호위차량이 안내를 하고(알고 봤더니 그렇게 안하면 교통체증 때문에 정상적인 일정 소화가 어려웠을 거라고 덧붙이기는 했습니다.) 브라질의 국력에 걸맞게 IMF지분을 더 받아야 한다고 한국의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윤장관은 "브라질이 원하는 것을 이해하겠는데, 그 주장 때문에 IMF개혁이 무산되면 결과적으로 브라질도 얻는 게 하나 없다는 점을 지적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IMF의 칸 총재는 윤장관에게 "자신의 명예를 걸고 개혁을 반드시 이뤄낼 테니, 한국도 적절한 역할을 분담해서 반드시 이뤄내자."고 부탁했다고 하고요.
하지만 특파원 간담회를 마치고 나가면서 윤장관에게 "그나저나 G20가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그 의미를 설명하고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겠다?"고 물었더니 윤장관이 "사실은 그게 제일 문제예요.홍보를 잘해야 하는데, 한국이 금메달을 따거나 승리하는 그런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어떻게 홍보를 하나 그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20개 나라 정상들이 오면 수행하는 인원들만 해도 대단하거든요. 각국 정부 대표들에 기자들까지 해서.. 그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와졌지만 국민들의 의식도 그만큼 올라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텐데, 가령 교통규칙이라든가 청결한 거리라든가..."하면서 정상회의의 실무책임자로서의 고민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G20정상회의가 대단한 국제회의고, 그래서 그 회의를 한국이 유치한 것 또한 대단한 일이기는 한데,또 그렇다고 G20를 잘 치러내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확 올라가고 경제규모가 확 늘어나고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 이제는 독재정권 시절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만을 들어야 했던 국민들이 아니라 각종 방송매체와 인터넷등을 통해 공무원들 못지 않게 많은 정를 얻고 있는 국민들이라는 점을 감안해 홍보 전략을 짜야 하는 고민을 정부가 하고 있습니다.어쩌면 그 것 또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