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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흥행요소…M&A 전쟁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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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14일 정몽구 회장측이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인사 조치, 사실상 좌천시키면서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일반인들에게 실체를 드러낸다. 다음날 정몽헌 회장측은 이익치 회장의 인사를 보류하고, 24일에는 정몽구 회장을 면직시키는 강수로 맞대응한다. 숨가쁜 반전을 거듭하던 아들들의 전쟁.

3월27일 병석에 있던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을 현대그룹 경영자협의회 회의 석상에 끌어 낸 정몽헌 회장측이 승기를 잡게 된다. 언론에 공개된 정주영 회장의 육성은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와 기아차 업무로 바쁘기 때문에 정몽헌 회장이 단독으로 그룹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 계열은 정몽구, 중공업 계열은 정몽준, 그리고 대북사업과 건설, 상선, 증권 등은 정몽헌 회장 쪽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그룹의 모태이자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였던 현대건설은 2001년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면서 채권단 손으로 넘어간다. 채권단은 그 현대건설을 9년 만에 비로소 시장에 팔겠다고 내놓았다.

그 사이 비극은 계속됐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코너에 몰렸던 정몽헌 회장은 2003년 스스로 계동 사옥에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부인 현정은 씨가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았지만 현대그룹은 2003년 KCC, 2006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게 된다. 2000년 '왕자의 난'에 이어 언론들은 '시숙부의 난'과 '시동생의 난’이라고 이름 붙였다.핍박받는 며느리의 이미지는 이렇게 형성됐다.

- 현대그룹의 당위, 현대차그룹의 당위

현대그룹은 2000년 '왕자의 난' 당시 정주영 회장이 현대건설은 정몽헌 회장이 맡도록 정리했던 사실을 강조한다. "아버지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아들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현대건설, 현대그룹이 지키겠습니다."라는 카피의 TV 광고는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대그룹은 故 정주영 회장의 유지인 대북사업이 향후 정상화될 경우 현대건설이 있어야 대북 SOC 사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명분도 내세웠다.

현대차그룹은 표면상 경제 논리를 내세운다. 현대건설을 글로벌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일을 누가 더 잘 해낼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여기엔 현대차그룹의 든든한 자금력이 배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정주영 회장이 일군 현대그룹의 모태 현대건설은 鄭 씨가, 長子가 되찾아 와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 현대그룹의 약점, 현대차그룹의 약점

현대그룹은 스스로 약 1조 5천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채권단이 매각하려는 현대건설 주식 38,879,000주(발행주식 대비 34.88%)의 가치는 지난 24일 종가 기준으로 2조 7,681억원.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전체 매각 대금은 3조 5천억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예상이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을 외부 투자자로부터 유치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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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의 입장도 현대그룹에 우호적이지 않다. 채권단으로서는 될수록 비싸게 파는 게 최선이고, 때문에 가격이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제1의 기준이 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단순히 입찰 때 높은 가격을 써 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채권단 입장에서는 현대건설에 대한 채권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매각 후에도 현대건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 주인의 재무적 능력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을 둘러싸고 소송까지 벌였던 입장에서 현대건설을 현대그룹이 인수하게 한다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채권단이 요구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거부한 '괘씸죄'를 떠나 채권단 스스로 재무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던 그룹에 3조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건설을 넘겨준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우건설을 통해 'M&A 승자의 저주'를 체험한 채권단으로서는 현대그룹의 재무적 능력을 더 철저히 검증하려 들 것이다.

현대차그룹으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싸움이다. 우선 핍박받는 며느리 이미지, 그리고 집안 싸움을 자초한다는 이미지를 깨야 한다. 자살한 남편의 회사를 힘들게 꾸려가는 며느리에게서 꼭 현대건설을 빼앗아 와야 하냐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戰도 무시 못 할 변수가 된다.

또 죽기살기로 현대건설 인수에 매달릴 만한 동력이 현대차그룹에게 과연 있느냐도 문제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현대건설 인수는 그룹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말한다.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8.3%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지분이 현대차그룹으로 넘어가는 순간 현대상선에 대한 양측의 지분율이 엇비슷해져 그룹 전체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수 있다. 그룹이 와해될 수도 있는 위기감은 현대그룹으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현대건설 인수전에 매달리게 할 것이고, 그렇게 사활을 건 경쟁자를 상대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이 아닌 누구라도 거북할 수 밖에 없다.

인수전이 과열을 빚을 경우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둘러싼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도 현대차그룹으로서는 경계 대상이다. 이미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건설 부문 계열사인 엠코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게 인수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엠코가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선을 긋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시아주버니와 제수, 두 개의 현대家가 벌이는 질 수 없는 싸움.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현대건설 부실의 원죄와 회생에 대한 기여도 등 새로운 논쟁거리가 파생되고, 10년 전 '왕자의 난'도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최고의 흥행 요소를 갖춘 M&A 전쟁이 이제 본격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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