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뉴스

"다른 기자들은 기사 안 된다고 했는데…"

인천공항 미화원들의 딱한 사연을 취재하고


구글 선호 소스에 SBS뉴스 추가

제가 인천공항 미화원들의 딱한 처지를 접하게 된 것은 2주 전 쯤이었습니다.

민주노총의 한 간부가 "기자님에게만 특별히 가르쳐 드리는 것이니 꼭 좀 취재해주십시오"라며 알려준 것입니다.

'꾀를 부리시는군. 내가 아마 5, 6번째로 제보를 접한 기자일거야...'

그 정도로 순위가 처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확인해본 바로는 다른 지상파 방송 기자와 저희 회사 동료에게 같은 제보가 들어왔더군요.

구미가 썩 당기지 않는 상황에서 미화원측 대표와 전화 통화를 해봤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미화원 대표 : "임금이 한 9억 천만 원 정도 떼였어요.  임금을 달라고 하는데도 주지 않고...게다가 인권침해도 수시로 당하고 있어요."

기자 : "무슨 말씀 이시죠?('어라? 간단한 얘기가 아닌데.')"

미화원 대표 : "VIP가 오면 다들 화장실에 숨으라고 그래요."

바로 취재 결정을 내리고 다음날 인천공항으로 향해 미화원들을 만났습니다.

미화원 :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 자식새끼들도 사주고 그래야 하는데 죄다 떼어먹고..."

사연을 들어본 즉, 미화원들이 소속된 용역회사에서 지난 14개월간 시간외 수당과 휴일 수당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미화원들이 나이가 많은데다 직장생활이 처음인 주부들이 대부분이어서, 응당 자기 몫이 돼야 할 수당을 챙기지 못한 미화원들이 430여 명에 달한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미화원들을 속상하게 한 것은 임금체불뿐 만이 아니었습니다. 원청업체인 인천공항공사와 소속 용역업체로부터 수시로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사람들 오면, 장관님이라든지 공항공사 사장님이라든지, 화장실이든 어디든 안 보이는 데로 가 있으라는 거야."

"우리가 지저분하니까 카트 저리로 끌고 가서 있어라. 화장실이고 뭐고 막 밀어대는거야. 우리가 거지도 아니고."

광고
광고 영역

들어보자니 딱한 노릇이었지만, 반대편 입장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공항공사와 용역업체측 간부를 잇따라 만나봤습니다.

용역업체 간부 : "임금 체불 된 것 없습니다. 미화원들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공항공사 간부 : "저희가 원청으로서 매달 임금이 어떻게 지급되는지 관리하거든요. 체불 없고요. 그리고 다른 기자들도 이거 취재하시다가 얘기가 안 된다고 해서 기사 안 쓰셨어요."

'어라? 뭐 하자는 거지?'

곧바로 오기가 도졌고, 잠시 자리를 비워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른 기자들에게는 사건 내용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던 담당 감독관은, 고용노동부를 전문적으로 출입하는 기자라는 소개에 사건의 전말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해줬습니다.

근로감독관 : "기자님. 임금 체불은 맞아요. 그런데 미화원들이 9억 원 넘게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어요."

얘기인 즉, 근로계약서에 '임금을 '포괄임금'으로 지급한다'라고 써 있는데, 각종 수당이 포괄 임금에 포함돼 지급된 것으로 볼 경우 법적 공방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자 : "판단은 공정하게 하셔야 겠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약자쪽으로 신경쓰셔야 하는게 맞겠죠?"

근로감독관 : ".... 체불임금 신고액 9억 원에서 최소 3억 원이 '포괄임금'으로 빠질 수 있으니 6억 원으로 쓰시는 게 안전하실 것 같습니다."

광고
광고 영역

다시 자리에 돌아왔을 때, 인천공사와 용역측은 여전히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인천공항공사 간부 : "인권 침해도 없었어요. VIP 올 때 화장실로 숨으라고 구체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고, 요인 경호상 굳이 VIP가 지나갈 때 그곳에서 청소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기자 : "그럼 일단 VIP가 올 때 피하라는 지침은 있긴 있었네요?"

용역업체 간부 : "현장 구두 지침 수준이죠."

취재가 다 끝났으니 더 듣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공항공사 간부 : "그럼 기자님 기사 잘 나가는거죠?"

기자 : "네, 기사 제목 뭘로 보고 할까요?"

공항공사 간부 : "제목은 '세계 최고의 공항이 노무관리는 꼴등'이라고 보고하세요"

기자 : "!!!"

공항을 떠나 회사로 들어오는 길에, 소위 '공항 좀 드나들었다'는 그들의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습니다. 그리고 편집실에서 최종 편집을 거의 마무리했을 무렵 공항공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자님, 기사가 좀 완화됐나요?"

 "죄송해요. 더 세졌어요." "!!!"

기사가 나간 뒤, 기자는 한동안 민주노총 측으로부터도 항의를 들어야 했습니다. 민언련의 경우는 '체불임금이 원래 10억 원인데 SBS 기자가 6억 원으로 축소해 썼다', '미화원들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는 정보를 빼먹었다'는 등 기자의 기사에 신랄한 비판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과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데 한계를 갖고 있는 그들이기에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리고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주 금요일 쯤, 공항 미화원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자님. 덕분에 밀린 임금 받게 됐습니다. 공항공사와 용역측에서 추석 전 체불 임금의 50%를 지급하고, 연휴 뒤에 50%를 마저 지급하기로 했어요."

SBS 기사가 나간 뒤, 임금체불은 없다고 주장하던 공항공사가 용역회사에게 체불 청산을 지시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미화원들이 받을 돈은 미화원들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한 '7억5천만 원'선에서 합의가 됐습니다.

(고용노동부의 중재나 추후 소송으로 받게 됐더라면, 6억 원 이상을 못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제가 쓴 기사가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를 낳았다는 소식에, 저도 간만에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많이 나아졌다는 우리 사회지만,우리 주변엔 불의로 인해 당연한 권리 마저 박탈당하는 이웃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을 마땅히 팔을 걷어부치고 해결해야할 기자라고 하지만, 같은 사실을 바라보는 조금씩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사이에서 기자 스스로가 길을 잃거나 갈등할 때가 많습니다.

이런 방황에 빠지지 않도록 저를 다잡아 주곤 하는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단순하지만 결코 어긋나는 일이 없는 이치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광고 영역
광고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광고
광고
광고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