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작을 예고하는 들녘엔 어떤 일이?
들녘엔 벌써 가을이 영글고 있습니다. 어제(8월31일) 김포시 월곶면의 한 들녘을 방문하고 올해도 태풍 등 큰 기상이변이 없으면 풍작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얼굴에는 풍작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쌀값 때문입니다.
김포에서 생산된 쌀은 전국에서 질 좋은 쌀로 알아줍니다. 그만큼 가격도 높게 쳐줍니다. 하지만 지난해 수확한 쌀이 다 팔리지 않다보니 신김포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는 쌀 재고가 1천 톤 가까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난해의 두 배에 달하는 물량이죠.
이렇다보니 햅쌀 수확기를 앞두고 2009년산 쌀이 팔리지 않는 겁니다. 이 곳의 미곡처리장 직원은 "쌀을 손해보고 팔아야할 지경이다. 그래도 김포 쌀은 질이 좋아 버텼는데, 햅쌀이 들어오기 전에 팔아야 할 것 같다. 올해도 수십억 원의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넘쳐나는 쌀 재고로 10년 만에 쌀값 최저치
올해까지 쌀 재고량은 149만 톤에 달합니다. 정부의 적정재고는 70여만 톤 수준. 적정 수준을 두 배가 넘는 물량이 남아 있는 셈이죠.
때문에 쌀값은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 산지에서는 80kg 한 가마에 13만원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불과 1달 전만해도 20kg에 5만원선이던 철원쌀은 3만원까지 급락했습니다.
쌀값이 떨어지면 소비자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정부와 농민은 속이탑니다. 생산원가도 못건지는 셈이니까요. 소비자도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만 쌀값 하락에 따른 손실을 국민 세금으로 일정부분 매워주는 셈이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도 피해잡니다.
이렇게 쌀값이 급락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1인당 연간 쌀소비량이 올해 73kg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3년 연속 풍작이 예상되면서 쌀 생산량은 늘었기 때문입니다. 쌀재고가 늘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쌀이 넘쳐 걱정하는 나라는 한국뿐?
농식품부 기자실에서는 "쌀이 남아서 걱정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는 씁쓸한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곳간이 넘치면 이를 풀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주면 해결될 일이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북한에 지원했던 수십만 톤의 쌀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됐고, 우리 국민들은 밥 대신 다른 곡물로 만든 음식을 더 많이 먹고 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쌀 수급안정대책은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겁니다. 우선 올해 예상되는 쌀 수요량을 초과하는 쌀은 전량 정부가 사들여 시중에 방출하지 않고, 2005~2008년에 생산된 묵을 쌀은 술 제조용과 가공용 등으로 긴급하게 처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되면 약 1백만 톤 가량의 쌀 공급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쌀 재벼 면적을 줄이는 방안으로 내년부터 4만ha씩 3년간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합니다. 12만 톤의 쌀을 생산하는 논이 사라지는 겁니다.
정부의 고육지책 쌀 대책···부작용에 주의해야
정부의 대책이 다급하고 불가피하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칫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앞으로 큰 흉작이 들 경우와 남북통일이 될 경우, 국제 곡물가가 급등할 경우 등이 예상치 못한 변수입니다.
이런 변수에 대한 치밀한 시나리오를 세워 정부의 대책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후속조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식량안보는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중요해지는 만큼 당장 쌀 생산을 줄여놓고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중장기적으로 쌀 공급을 줄이는 것보다 다양한 쌀 가공품을 개발해 쌀 소비를 늘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라면이나 빵보다는 밥을 더 많이 먹겠습니다. 쌀 소비가 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