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가장 큰 뿌리 중의 하나는 빛 입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볼 수 있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하는 것들의 재료를 얻습니다. 어떤 빛이 있고 그 빛이 비춰지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 '보여짐'을 통해 인상을 갖게 됩니다.
같은 사람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 빛이 달라지면 인상이 달라보이게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요, 이런 '인상'이 상상력을 자극하게 됩니다.
부드러운 조명과 아름다운 배경이 가져다주는 빛의 조화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인상을 좋게 바꾸어 주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섬세하다거나 지적인 것 같다거나 아름답다는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빛의 마술인 거죠. 소위 '조명발에 속지 말자'는 얘기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상 때문에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인식하지 말자는 뜻인 것 같습니다.
강한 인상을 경험하게 되면 종종 꿈 속 에서도 그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꿈속에서 상상하던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떠올리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런 빛의 마술에 큰 의미를 두고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이 바로 '인상주의' 화가들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던 것들인데 예술가들이 뭔가 대단한 것인 양 깨달은 시기가 생각보다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중요한 것은 빛이 있기 때문에 형태를 가지는 것들은 고정된 모습이 아닌 다양한 인상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인상으로 보여지듯이 말입니다. 사물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양상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지요. 이런 양상이 모두 빛의 마술이자 빛의 장난 때문에 벌어진 효과입니다.
우리는 낮과 밤의 빛의 변화를 통해서 주위의 사물과 사람들을 인식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소리나 촉감보다도 시각에 많이 의존합니다. 감각의 우위라기보다는 정보량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이나 손님들을 만날 때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해 많이 신경을 쓰게 됩니다. 어떻게 보여질까에 대한 고민은 머리모양, 옷맵시 등을 신경 쓰게 만듭니다.
인사말도 이런 시각적인 정보를 알아 차려서 관심을 보여주면 좋아하게 됩니다. 가령 머리모양이 달라졌다든지 가방이나 옷을 새로 샀다든지 하는 것을 알아차려 주고 칭찬해 주면 다들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예술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경우도 이런 시각적인 정보를 많이 표현합니다.
물론 요즘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작품을 감상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시각적인 효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나의 외모'가 어떻게 보여 지는지에 대한 고민이 '나의 작품'이 어떻게 보여 지는지에 대한 고민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작가가 의도한 시각적인 장치는 빛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시할 작품을 기획하는 직업을 큐레이터라고 알려져 있지요. 작품을 어떻게 설치할까를 결정하고 전시장의 '빛'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업무도 굉장히 중요한 큐레이터의 작업입니다. 전시장을 비추는 빛에 따라서 작품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작품을 어떤 높이에 걸어야 하는가도 작품의 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작품과 그 작품에 비춰진 빛을 어떤 각도로 바라볼지 미리 결정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년 6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항산 임항택 선생님의 '진사백자전'은 작품과 빛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을 빌려서 한 전시였기 때문에 전문적인 큐레이터가 없었을 거라고 짐작을 해 봅니다.
백자 속에 구현하기 힘든 진사(붉은빛 문양)가 멋지게 표현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하지만 형광등과 하얀 받침대와 하얀 벽이라는 조합은 이 아름다운 진사백자가 배경 속에 묻히게 만드는 최악의 설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작품을 어떤 빛 안에 위치하게 할지를 제대로 보여 주었던 전시의 예를 든다면 최근에 뮤지엄닷피플에서 열렸던 '도쿠진 요시오카-스펙트럼 전'입니다. 공간과 빛의 조화 자체가 커다란 작품을 이루고 있는 전시입니다.
초등학교 과학시간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프리즘들이 빛의 마술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변신한 것 같습니다. 프리즘이란 아시다시피 빛의 굴절을 통해 '빛 속에 숨겨진 빛'을 이끌어내는 도구인데요, 빛이 주는 시각적인 상상재료를 가지고 꿈을 꾸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스와로브스키 디자인에도 참여했던 작가 도쿠진은 빛과 작품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전시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경우에는 작가가 작품의 설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을 텐데요. 아니 좀 더 정확이 얘기하자면 전시장에 작품의 재료를 가져다가 설치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완성시켰을 것입니다.
[영상토크] '도쿠진 요시오카 - 스펙트럼전' 영상과 음악
(배경음악은 도쿠진이 전시공간에 틀어놓으려고 제작한 음악, Teardrop)
재미있는 것은 빛과 작품의 조화를 전시장에 구현했다는 점 이외에도 독특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효과입니다. 의도된 우연의 산물을 과학적인 트릭을 사용해서 보여주는 작품도 있는데요. 물속에 어떤 형태의 틀을 놓고 특정한 용액을 부어 놓으면 그 틀에 수정 같은 결정체가 생겨나 말 그대로 '자라게' 됩니다.(용액의 성분은 작가가 절대 비밀이라고 했다네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자연적인 결정체들이 생겨났지만 그 자세한 모양은 미리 알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 생기는 것이죠. 수정처럼 반짝이는 결정들은 우연히 그런 모양을 가지게 되었지만, 마치 꿈이나 만화에서 등장하는 수정보석이 자라고 있는 동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물속 거품에서 자라났다고 작품 제목도 '비너스' 라네요.
또 특수한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공원벤치 모양의 작품은 너무나 투명하게 보입니다. 시간이 정지된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물’ 처럼요. 영화 어비스(심연)에서 생명을 가진 물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된 것을 처음 보았을 때의 신기함을 다시 체험하게 합니다.
도쿠진의 작품은 다른 여러 가지 의도도 숨어 있겠지만 일단 보는 이로 하여금 빛의 아름다움을 새삼 알게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빛이 나뉘고 합쳐지고 펼쳐지는 스펙트럼이 작품으로 놓여 있는 사물과 함께 커다란 작품을 이루고 있습니다. 전시장은 하얀 배경인데요.
앞에서 예를 들었던 '진사백자 전'과 달리 아주 효과적으로 빛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투명한 스펙트럼 작품 뒤에는 따로 조명을 설치해서 빛을 작품의 하나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실내 작품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태양 빛을 그대로 통과 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도 프랑스 로제르교회 예배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군요.
도쿠진은 화가라기 보다는 디자이너이고 상업적인 디자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빛의 마술을 이용한 작품들은 공간속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빛이 남기는 인상을 좇아가며 살고 있듯이 미술작품도 빛의 인상을 좇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에 '인상 깊게' 본 사물을 빛깔을 간직해 보고 그것을 표현 할 수 있다면 누구나 미술가, 평론가, 소설가 가 될 수 있을 텐데요. 요즘은 누구나 인터넷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며 살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릴 때에도 빛이 주는 인상을 한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알고 보면 빛 중에 가장 아름다운 태양빛과 달빛이 모든 보여 지는 것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