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소드 1.
며칠 전, 광고 기획자 이제석 씨에 대한 '루저' 발언 논란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이제석 씨를 인터뷰했던 나이트라인 팀과는 같은 보도국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저의 방명록에 글을 남겼습니다. "소심하게 혼자 도망 가는 것 같은 뉘앙스"라면서 제가 쓴 마지막 줄에 대한 인상 비평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 글을 쓴 분은 저의 글을 '루저 발언 논란'에 대한 자기 변명 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어차피 한 집안의 일인데 자기는 발을 싹 빼려고 한다는 의심도 갖고 계신 것으로 보이고요.
제가 그 글을 쓴 취지는 무책임한 언론 비평, 그리고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고 퍼나르기를 하는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문구는요? 그건 나름 객관성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제가 논란의 발원지였던 나이트라인 소속은 아니라는, 따라서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강조하려 했던 것이었지요.
제가 방명록의 글을 언급하는 이유입니다. 그 분의 언급에서는 이른바 '객관적인 언론'을 심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갖고 있는 분이 사실은 무척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 에피소드 2.
요즘 여러 곳에서 두루 각광받는 단어가 '정의'입니다.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만...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정의를 부르짖는 걸 보니 한동안 때아닌 '정의'에 대한 논란을 목격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23일 아침 동아일보에는 요즘 필독서가 되고 있는 <정의론>의 저자인 미국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동아일보를 방문해 김재호 사장과 환담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샌델은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던 정몽준 의원의 싱크탱크라는 아산정책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해 22일에는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서 강연도 했습니다.
물론 동아일보가 샌델에 대한 기사를 썼다는 게 그렇게 관심을 끌 일은 아니지요. 저의 눈을 확 끌어당긴 건 기사에 인용된 샌델과 김재호 사장의 대화였습니다. 해당 부분을 인용합니다.
<샌델 교수는 동아일보의 방송사업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김 사장은 "동아일보는 방송을 운영하다가 1980년 군사정권에 빼앗긴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가 지금 종편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당시 빼앗겼던 방송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샌델 교수는 "동아일보가 사업자로 선정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의를 세우는 일이 되겠군요"라고 답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 참 좋은 말입니다. 사실 많은 젊은 가슴을 뛰게 했던 표현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의라는 말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건 좀 뜨악한 일입니다. 더구나 <정의론>의 저자를 불러서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행태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샌델은 자신이 이렇게 이용당한다는 걸 알았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읽은 그 기사는 정말 '기사'였을까요?
# 마무리
정리합니다. 제 인터넷 블로그 방명록에 어느 방문객이 남기신 글은 객관적인 언론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 바탕을 둔 겁니다. 저는 반대 생각을 갖고 있지요. 그런데 동아일보의 기사는 그 분의 생각이 저의 주장에 비해 훨씬 더 현실적이라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편을 받기 위해서는 '정의론'의 저자까지 신문에 등장시켜 '자사가 종편 허가를 받는 것이 정의'라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 언론.
아주 당당한 자세인 건 분명합니다. 기사와 자사의 입장은 무관하다는 얄팍한 얘기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자사 주장을 강변하면서, 또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기사를 쓰면서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보다는 이게 훨씬 나은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직도 언론은 객관적이거나, 적어도 최대한 객관적이려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의원들은 항상 공직 후보자를 감쌉니다. 이번 인사 청문회에서는 특히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의례적인 추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 양식은 정치인의 것입니다. 지금의 야당 의원들도 과거 여당일 때 지금과 같은 파상 공세를 펼치지는 않았습니다.
언론은 달라야 합니다. 아직은 완전히 기본까지 무너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언론들도 지난 정권에서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검증 보도를 했고, 이번에는 보수적이라는 언론들도 총리,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기사처럼 용감하게 자사 입장을 '기사'로 내보내는 곳도 많습니다.
이제는 언론 소비자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좀 더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언론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언론이나 언론학자들도 이런 문제를 좀 더 치열하게 살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