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원형이 제대로 보존된 것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제방이 얼마전 울산에서 발견됐는데요. 조선시대 문헌인 '학성지'에 이 저수지에 관한 언급이 있어 학계에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조윤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혁신도시 예정부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대형저수지 제방입니다.
학계에서 '약사제방'으로 명명한 이 저수지는 통일신라시대 토기와 점성토 조개껍질을 차례로 쌓아올려 고대 토목공법의 비밀을 간직한 유적지입니다.
그런데 1749년 조선 영조 때 출간된 '학성지'에 이 유적지로 추정되는 저수지가 등장합니다.
학성지에는 부의 동쪽 다시말해 현재 중구 동헌에서 10리 지점 병영성 북쪽에 길이가 360척, 너비가 230척인 '북산정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저수지 면적은 물론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도 동헌에서 인도를 따라 병영성을 거쳐 약사제방까지 이르는 거리는 4km로 학성지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후 80년 뒤인 1832년 순조 때 발간된 울산읍지에도 북산정제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다만 저수지의 넓이가 학성지에 비해 30척, 쉽게 말해 80년 동안 10m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박채은 소장/울산 향토사연구소 :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약사천이) 건천화 하다보니 넓이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지명사에서는 이 저수지의 존재가 사라졌습니다.
조선 말에서 일제초기에 이르는 80여 년 사이 수량부족이나 하류 농지의 주거화 등으로 저수지의 필요성이 떨어짐에 따라 둑방만이 그 형태를 유지한 채 매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박채은 소장/울산 향토사연구소 : 이 때 일본인들이 조사를 아주 상세히 했거든요. 전국을 다 한 겁니다. 조선지리지 이 책이…. 이 자료 속에 표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북산정제'는 흔적이 사라진 것으로….]
학계와 울산시는 북산정제가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80여 년 사이 발간된 다른 문헌을 조사하면 북산정제와 약사제방과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다며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