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논문 중복게재 여부를 놓고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연구윤리를 책임진 교육부 장관 후보자라는 점에서 논쟁은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후보자가 극구 부인한 KDI (한국개발연구원) 재직시절 논문들은 중복게재인가 아닌가? 관련 기사를 썼던 입장에서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이주호 후보자가 쓴 논문부터 살펴보자. 이 후보자는 지난 96년 4월 '여성 고용문제에 대한 제도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KDI 정책연구에 발표한다.
그리고 다섯 달 뒤 '고용대책과 인적자원개발'이라는 연구보고서를 간행물로 출간하면서 이 논문의 내용을 50페이지 가량 그대로 인용한다. 물론 다섯 달 전 논문을 인용했다는 내용은 참고문헌이나 각주에 전혀 표시하지 않았다(야당 의원들이 제시한 다른 예도 있지만 편의상 기자가 썼던 기사의 예를 인용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이 후보자 측은 아래와 같은 해명자료를 보내왔다.
■ KDI 政策硏究에 실린 학술논문 "女性 雇傭問題에 대한 制度的 接近"(74페이지)과 저서 "雇傭對策과 人的資源開發 : 制度的 接近(334페이지)"의 경우에도 논문의 내용이 저서 내용에 포함되었더라도 중복게재라고 할 수 없음
■ 학술지에 실린 학술논문을 신문, 주간지, 월간지 등 비학술단체의 발간물에 싣거나 단행본 내용의 일부로 발간하는 경우, 이는 '중복게재'라고 간주하지 않는 것이 관련기관과 학계의 공통적인 견해임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윤리 지침의 경우, "기발표된 연구결과들을 모아서 다른 형태의 출판물로 출간하는 경우는 중복게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음(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윤리지침, 2010.6.)
■ 서울대 연구윤리 지침(2010.7.16)의 경우에도, 제 9조(중복게재·출간의 제한) 제 2항에서 "이미 게재된 논문들을 모아 저서로 출간하는 경우"(제3호), "이미 게재·출간된 논문 또는 저서의 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교양서, 대중잡지 등 비학술용(非學術用) 출판물에 쉽게 풀어 써서 게재·출간하는 경우"(제7호) 등은 중복게재가 아니라고 정하고 있음
처음에 해명자료를 보고 정말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직접 확인작업을 거치는 것이 취재의 기본인 만큼 KDI에 요청해 윤리지침 원문을 받아봤다.
이 후보자 측의 해명 가운데 틀린 것은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이 누락돼 있었다.
KDI 윤리지침은 아래와 같다.
4. 중복게재
가. "중복게재"라 함은 연구자 본인의 동일한 연구결과를 인용 없이 중복 발간하거나 대부분의 데이터가 같고 대부분의 문장을 같게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나. 기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모아서 다른 형태의 출판물로 출간하는 경우는 중복게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미 발표된 결과들을 충실히 인용하여야 한다.
KDI 윤리지침은 이 후보자측의 주장처럼 다른 형태의 출판물로 출간하는 경우 중복게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 단서조항이 있다. 이미 발표된 결과들을 충실히 인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출판물'이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학술지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형태의 출판물에도 인용표시를 해야한다는 점을 분명히하고 있다.
설사 이 후보자측이 제시한 "■
학술지에 실린 학술논문을 신문, 주간지, 월간지 등 비학술단체의 발간물에 싣거나 단행본 내용의 일부로 발간하는 경우, 이는 ‘중복게재’라고 간주하지 않는 것이 관련기관과 학계의 공통적인 견해임
"이라는 부분을 인정한다해도 KDI가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비학술단체 발간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KDI가 비학술단체라는 말인가?
또 하나, 이 후보자측은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윤리 지침의 경우, "기발표된 연구결과들을 모아서 다른 형태의 출판물로 출간하는 경우는 중복게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음(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윤리지침, 2010.6.)"
이라고 해명자료를 보내오면서 정작 뒤에 있는 단서조항,
"다만, 이 경우에도 이미 발표된 결과들을 충실히 인용하여야 한다."
는 빼버렸다.
서울대 연구윤리지침도 마찬가지다.
제9조 (중복게재·출간의 제한)
① 연구자는 이미 게재·출간된 자신의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확한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동일 언어 또는 다른 언어로 중복하여 게재·출간하여서는 아니 된다. 연구 데이터나 문장이 일부 다르더라도 전체적으로 동일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또한 같다.
② 제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 해당하는 게재·출간을 할 수 있다.
다만, 제1호부터 제6호까지의 경우에는 정확한 출처표시 또는 인용표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다만, 전공 분야의 특성과 해당 학계의 의견을 고려하여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
1. 학위논문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별개의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출간하는 경우
2. 연구용역 보고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논문 또는 저서로 게재·출간하는 경우
3. 이미 게재된 논문들을 모아 저서로 출간하는 경우
4. 동일한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동일 또는 다른 언어로 게재·출간하면서 해당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은 경우
5. 학술지에 짧은 서간논문(letter, brief communication 등)을 게재한 후 이를 긴 논문으로 바꾸어 게재·출간하거나, 연구 데이터, 해석 또는 자세한 연구수행과정의 정보 등을 추가하여 게재·출간하는 경우
6. 이미 게재·출간된 논문 및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가 저자의 승인 하에 다른 편저자에 의해 선택, 편집되어 선집(anthology)의 형태로 출간되거나, 학술지의 특집호에 게재되는 경우
7. 이미 게재·출간된 논문 또는 저서의 내용 전부 또는 일부를 교양서, 대중잡지 등 비학술용(非學術用) 출판물에 쉽게 풀어 써서 게재·출간하는 경우
8. 그 밖에 위 각 호에 준하는 게재·출간으로서 학문적 진실성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경우
서울대 연구윤리지침도 밑줄친 부분에서 보듯 명확한 단서조항을 두고 있다(물론, 그 뒤에 또 다른 단서조항도 있지만 객관적 기준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다 이 후보자측도 이 조항을 근거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정리하자면 이 후보자는 인용표시 없이 논문을 다른 형태의 발간물에 사용한 것으로 이는 KDI가 규정한 중복게재의 정의와 정확히 일치한다.
'
중복게재'라 함은 연구자 본인의 동일한 연구결과를 인용 없이 중복 발간하거나 대부분의 데이터가 같고 대부분의 문장을 같게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후보자 측은 이후 몇 차례 해명자료나 전화를 해왔고 기사 작성 당일, 위와 같은 단서 조항이 있음을 이 후보자 측에 알리고 해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담당자는 단서조항을 확인한 뒤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아무런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23일 열린 인사청문회...
이주호 후보자는 야당 의원들의 논문 중복게재에 대한 질문공세에
"중복 게재의 경우에는 특히 학술지의 논문들 간의 중복 게재가 문제가 되고요. 기타의 발간물과 학술지 간의 중복은 사실 많이 허용되는 것이 상례입니다."
라는 해명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앞서 예를 살펴봤듯이 KDI의 연구윤리 지침 어디에도 중복게재 문제가 학술지간 논문 중복에만 국한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서울대 윤리지침에도
"연구자는 이미 게재·출간된 자신의 논문이나 저서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정확한 출처표시 및 인용표시 없이 동일 언어 또는 다른 언어로 중복하여 게재·출간하여서는 아니 된다."
라고 규정해 논문 뿐 아니라 저서도 중복게재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기사 작성 당시 인터뷰했던 서울대 최영찬 교수(서울대 평의원회 평의원)도 학술지간 중복만 논문 중복게재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최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해도 학계에 최 교수와 같은 반론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후보자가 주장한 것처럼 기타 발간물에 대한 중복 허용이 결코 "상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후보자가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런 KDI 윤리기준은 최근, 정확히 말하면 2010년 6월 30일에 작성된 것으로 당시 96년 기준과는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과의 질문 답변에서도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 KDI 윤리기준에 문제가 없었고 지금 야당이 말하는 윤리기준은 최근에 작성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명의 근거로 최근 KDI 연구윤리지침을 먼저 들고 나온 건 이주호 후보자 쪽이었다.
지금의 연구윤리기준에 비춰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해명하다 돌연 당시 윤리기준에는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누가봐도 상당히 군색해보일 수밖에 없다. 당시 윤리기준 운운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최근 윤리지침을 들고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사실 이 중복게재 논란은 이 후보자측이 "최근 강화된 윤리기준에는 못미치지만 당시 기준으로서는 문제가 없었다."는 정도로 해명했으면 간단히 정리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1990년에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한 이주호 후보자가 이 정도 연구윤리를 몰랐을 리 없다는 비판도 있다.)
인사청문회 때면 야당의원들은 철저한 검증을 다짐한다. 물론 그 가운데 정치공세적 질문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이주호 후보자에게 집중된 논문 중복게재 추궁이 야당의 단순한 정치공세였는지, 아니면 이 후보자의 무원칙한 해명이 초래한 논란이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